秋葉原
( 아키하바라 )
아키하바라(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가전제품 상점 및 암시장의 발달로 아키하바라 전자상가(秋葉原電気街, 아키하바라 전기가)가 형성되었으며, 서울특별시의 용산전자상가, 종로구의 세운, 낙원상가를 합쳐 놓은 것보다도 더 크다.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과 함께 전자기기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취급하는 상점이 늘어선 세계 최대의 전자상가로 발전했다. 비디오 게임과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난 이후 애니메이션 상점과 취미 상점 등이 대거 밀집한 지역으로도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지역의 규제 완화와 동시에 2001년 도쿄도에서 '아키하바라 도시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아키하바라역을 중심으로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아키하바라 UDX를 비롯한 여러 복합 빌딩이 건설되어 아키하바라를 방문하는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현재, 아키하바라는 오타쿠 문화의 중심지이자 비디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컴퓨터 관련 상품들의 상점가로 유명하다. 특히 유명 애니메이션 광고들이 상가에 부착되어 있으...더 보기
아키하바라(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가전제품 상점 및 암시장의 발달로 아키하바라 전자상가(秋葉原電気街, 아키하바라 전기가)가 형성되었으며, 서울특별시의 용산전자상가, 종로구의 세운, 낙원상가를 합쳐 놓은 것보다도 더 크다.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과 함께 전자기기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취급하는 상점이 늘어선 세계 최대의 전자상가로 발전했다. 비디오 게임과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난 이후 애니메이션 상점과 취미 상점 등이 대거 밀집한 지역으로도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지역의 규제 완화와 동시에 2001년 도쿄도에서 '아키하바라 도시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아키하바라역을 중심으로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아키하바라 UDX를 비롯한 여러 복합 빌딩이 건설되어 아키하바라를 방문하는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현재, 아키하바라는 오타쿠 문화의 중심지이자 비디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컴퓨터 관련 상품들의 상점가로 유명하다. 특히 유명 애니메이션 광고들이 상가에 부착되어 있으며, 많은 메이드 카페와 AKB48 극장을 찾아볼 수 있다.
아키하바라 지역은 에도 시대에 에도의 관문 일대로서 에도의 북서쪽으로 향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에 많은 수공업자들과 상인들, 그리고 낮은 계급 사무라이들이 거주했다. 1896년 도쿄의 화재로 지역이 전소되었으며, 이후 화재를 막기 위해 이 지역에 아키바 신사(秋葉神社)가 지어졌다. 이후 이 부근은 아키바가하라로, 그리고 아키하바라로 알려지게 되었다.[1][2] 1888년 아키하바라역이 지어진 이후, 아키바 신사는 다이토구로 이전해 현재까지 남아 있다.[3][4][5]
아키하바라역은 1890년에 개통되어 주요한 화물 운송 거점이 되었고, 지역에는 농산물 시장이 대규모로 들어섰다. 1920년대, 역의 여객 운송이 시작되면서 많은 승객들이 오가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혼란기에는 암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아키하바라가 일본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지역에서는 상업이 발달하고 사업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었다.[6] 1930년대부터, 아키하바라의 이러한 환경은 지역을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스테레오 등 가전제품에 특화된 미래적인 상업 지대로 만들었고, 아키하바라는 전자상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2][7]
1980년대경 가전제품 사업들이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아키하바라의 상점들은 당시 전문가 및 취미에서만 사용되던 개인용 컴퓨터로 초점을 옮겼다. 이러한 새로운 전문화는 오타쿠라는 새로운 소비층을 데려오게 되었다.[2]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는 애니메이션, 만화, 비디오 게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고객들에게 자연스레 적응하게 되었다. 아키하바라와 오타쿠들 사이의 관계는 계속 이어져 현재 이 지역은 세계적으로 오타쿠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 몇몇 오타쿠들은 아키하바라를 성지로 여기고 있다.[8]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2008년 6월 8일 일요일 낮 12시 33분, 한 남성이 군중을 트럭으로 덮치고 흉기를 휘둘러 17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중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경시청은 가해자 가토 도모히로를 체포했다. 이후 2011년에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가토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살인 사건 이후 수년간 중단되었던 보행자 천국[9]은 2011년 1월 23일 보안 시설 및 경비를 대폭 강화하여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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