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거(일본어: 皇居 코쿄[*])란, 일본 천황의 평소 주거지, 즉 황궁으로 관광지다.

1868년(메이지 원년) 메이지 천황의 도쿄 행행에서 에도 성은 도케이 성이 되었고, 도쿄의 황거로 삼았다. 1869년(메이지 2년) 2번째 도쿄 행행에서 천황의 도쿄 채류를 발표하였고, 도케이 성은 황성으로 개명하였다. 1873년(메이지 6년) 에도 성 니시노마루의 화재로 소실되어 잠시 동안, 아카사카 이궁을 임시 황거로 삼았다. 1879년(메이지12년) 니시노마루에 새로운 궁전의 조영을 결정하였다. 1888년(메이지 21년) 메이지 궁전이 완공되어 이후 황성은 궁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메이지 궁전은 구루마요세[1], 히로마[2], 정전, 호오노마, 도자이노 다마리[3], 호메이덴, 지쿠사노마 등 응접·정무의 공간과 천황의 처소에 해당하는 안쪽 궁전까지 연결되어 있다.

1945년(쇼와 20년) 5월 공습에 의해 메이지 궁전은 소실되었고, 그 후, 쇼와 천황 부부는 후키아게 정원내의 문고(文庫)를 임시 거처로 삼았고, 궁내청사 3층을 임시 궁전으로 했다. 1948년(쇼와 23년) 궁성(宮城/규조)의 명칭이 폐지되고 황거(皇居/고쿄)로 불리게 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잠시 동안, 소실되었던 궁전의 재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쇼와 천황의 측근 이리에 스케마사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폐하는 전쟁종료 후, “국민이 전쟁의 재난으로 주거할 집도 없이 보내고 있는 이 시기에 새로운 궁전을 조영해서는 안다.”라고 국민생활 향상을 최우선시하여 소실된 궁전 등의 재건을 기다려달라》라는 취지였다고 적고 있다.

1955년대 들어서 전후 재건이 일단락될 무렵 궁전 재건의 움직임에 활기가 띠기 시작했고, 1959년(쇼와 34년) 황거조영심의회의 회신을 토대로 1960년(쇼와 35년)부터 새로운 궁전 조영이 시작되었다. 신궁전은 메이지 궁전과 같이 천황의 처소와 연결시키지 않고 어소와 궁전을 따로 조영하였다. 1961년(쇼와 39년) 우선 쇼와 천황 부부의 처소로써 황거안의 후키아게 지구의 후키아게 어소가 완성되었다. 신궁전은 메이지 궁전터에 1964년(쇼와 39년) 착공하여, 1968년(쇼와 43년) 10월 완공되었다. 1969년(쇼와 44년) 4월부터 사용되었다. 더불어 후키아게 어소는 쇼와 천황이 사망(崩御)한 후, 황태후의 처소로 사용되어 후키아게오미야 어소로 불리었다.

아키히토 부부는 황위를 계승한 후 잠시 동안 아카사카 어소에서 머물면서 황거의 궁전을 왕래했지만, 황거안 후키아게 지구의 한 귀퉁이에 새로운 어소를 건립하여 1993년(헤세 5년) 12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우차에서 승하차하기 위해 현관앞에 지어진 구조물 히로마 란 무가 저택 현관부에 있던 넓은 방을 말한다.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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