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pella Sistina

( 시스티나 경당 )

시스티나 경당(라틴어: Aedicula Sixtina)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경당이다. 시스티나 성당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건축 양식이 타나크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시스티나 경당은 1473년에서 1481년 사이에 기독교의 오래된 옛 대성당(Cappella Magna)을 복원했던 교황 식스토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기간에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를 포함한 화가 무리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프레스코화 벽판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그림들은 1482년에 완성되었으며,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기념 미사 때 식스토 4세에 의해 축성되었다.

식스토 4세의 치세 이래,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이 종교적·직무상의 활동을 하는 장소로서의 소임을 해 왔다. 이곳은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종교적 의식인 콘클라베를 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서 유명하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15세기 후반 교황 식스토 4세의 시대 때, 바티칸에 거주하는 성직자들과 공무원들, 특출한 평신도들을 포함해서 약 200명으로 구성된 법인체가 조직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황의 일정표에 의해 모든 성당이 회합하도록 규정된 50개의 교회 행사들이 있었다.[1] 이러한 50개의 교회행사 가운데 35개가 미사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8개의 미사는 주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대표되는 대성전들에서 거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회중이 참석하였다. 이 중에는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와 부활절 미사도 포함되었다. 다른 27개의 미사는 좀 더 규모가 작고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서 거행되었으며, 이를 위해 마조레 성당(Cappella Maggiore)이 사용되었는데, 이 성당은 나중에 시스티나 성당으로 재건되었다.

 
교황 식스토 4세

마조레 성당은 교황과 그의 수행원들이 날마다 전례를 위해 이용하였으며 또한 다른 성당들과 비교하여 대성당(大聖堂)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교황 식스토 4세의 재위 당시 이 성당은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성당으로 프라 안젤리코가 장 식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마조레 성당은 1368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레비존드의 안드레아가 교황 식스토 4세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지금의 성당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기존의 마조레 성당을 헐었을 당시 이미 벽이 기울어진 폐허 상태였다고 한다.

마조레 성당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지금의 성당은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바치오 폰델리가 설계하였으며,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조반니노 데 돌치의 감독 아래 1473년에서 1481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지금의 성당 넓이는 원래 있었던 옛 성당을 거의 유사하게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완공되고 나서, 성당 내부는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전성기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들로 치장되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첫 번째 미사는 1483년 8월 15일인 성모 승천 대축일에 치러졌으며, 축성한 다음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의식이 이루어졌다.

시스티나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별히 교황이 여행 중이 아니라면 교황의 일정에서 중요한 의식이 있으면 그것을 치르는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상설 성가대도 있으며, 이 성가대를 위해서 수많은 성가가 작곡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알레그리가 작곡한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Miserere Mei Deus)》가 있다.

교황 선출

시스티나 경당의 주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추기경단이 선종한 교황의 자리를 계승할 인물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 선거 장소로 제공되는 것이다. 콘클라베가 소집되면, 지붕에 굴뚝을 설치하여 신호로 연기가 피어올라 교황의 선출 여부를 외부에 알린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을 경우, 콘클라베 때 사용한 투표용지들을 화학 첨가물과 같이 불에 태우면 하얀 연기가 나타난다. 만약 후보자가 2-3분의 1 다수보다 적은 표를 얻으면 추기경들은 투표용지들을 젖은 짚 또는 화학 첨가물과 함께 불에 태워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이것은 아직 새 교황을 선출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2]

또한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동안 추기경들을 위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하인들의 수발을 통해 음식과 취침 장소 지원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콘클라베는 서구 대이교까지 도미니코회에서 관리하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서 열렸으나, 1455년부터는 바티칸에서 열렸다.[3]

한때 콘클라베 기간에 각 추기경 후보자들이 모두 동등한 명예를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좌석 위에 뚜껑 모양의 차양이 있었다. 새 교황이 자신의 선출을 수락하면 곧바로 교황으로서 새 이름을 결정하는데, 이때 다른 모든 추기경은 좌석에 붙은 줄을 잡아당겨 차양들을 일제히 내린다.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개정되기 전까지는 어느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는지를 나타내려고 추기경마다 차양의 색깔을 다르게 했다. 교황 바오로 6세 때부터는 차양들을 폐지하였는데, 바오로 6세가 재위하면서 추기경들의 수가 벽 앞에 두 줄로 앉아야 할 정도로 많이 늘어난 데다가 차양이 뒷줄에 있는 추기경들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Pietrangeli, 24. Saunders, Fr. William P. "The Path to the Papacy Archived 2007년 11월 11일 - 웨이백 머신". Arlington Catholic Herald, March 17, 2005. Retrieved on June 02, 2008. Chambers,D.S. "Papal Conclaves and Prophetic Mystery in the Sistine Chapel". Journal of the Warburg and Courtauld Institutes. Volume 41, 1978. 32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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