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 of 베를린

베를린(독일어: Berlin IPA: [bɛɐˈliːn] 듣기 )은 독일의 수도이자 면적과 인구 면에서 최대 도시이다. 도시 경계 내 인구에 따르면, 인구는 370만 명으로 유럽 연합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베를린은 독일의 16개 주 중 하나로 브란덴부르크주에 둘러싸여 있으며,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인 포츠담과 인접해 있다. 인구 약 450만 명의 베를린 도시권은 독일에서 루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권이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대도시권은 약 62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라인-루르와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지역 다음으로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권이다.

베를린은 서부 슈판다우구에 있는 하펠강(엘베강의 지류)으로 흐르는 슈프레강 강둑에 걸쳐 있다. 베를린의 주요 지형적 특징으로는 서부, 남동부 자치구에 위치한 슈프레강, 하펠강과 다메강에 의해 형성된 많은 호수가 있으며, 그중 가장 큰 호수는 뮈겔제호이다. 베를린은 유럽 대평원에 위치하여 온화한 계절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도시 면적의 3분의 1가량은 숲, 공원, 정원, 강, 운하와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베를린은 중부 독일어 지역에 있으며, 베를린 방언은 루사티아 방언의 변형이다.

베를린은 13세기에 처음 문서로 기록되었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무역로가 교차하면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 (1417-1701), 프로이센 왕국 (1701-1918), 독일 제국 (1871-1918), 바이마르 공화국 (1919-1933), 나치 독일 (1933-1945)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베를린은 계몽주의, 신고전주의, 자유...더 보기

베를린(독일어: Berlin IPA: [bɛɐˈliːn] 듣기 )은 독일의 수도이자 면적과 인구 면에서 최대 도시이다. 도시 경계 내 인구에 따르면, 인구는 370만 명으로 유럽 연합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베를린은 독일의 16개 주 중 하나로 브란덴부르크주에 둘러싸여 있으며,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인 포츠담과 인접해 있다. 인구 약 450만 명의 베를린 도시권은 독일에서 루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권이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대도시권은 약 62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라인-루르와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지역 다음으로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권이다.

베를린은 서부 슈판다우구에 있는 하펠강(엘베강의 지류)으로 흐르는 슈프레강 강둑에 걸쳐 있다. 베를린의 주요 지형적 특징으로는 서부, 남동부 자치구에 위치한 슈프레강, 하펠강과 다메강에 의해 형성된 많은 호수가 있으며, 그중 가장 큰 호수는 뮈겔제호이다. 베를린은 유럽 대평원에 위치하여 온화한 계절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도시 면적의 3분의 1가량은 숲, 공원, 정원, 강, 운하와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베를린은 중부 독일어 지역에 있으며, 베를린 방언은 루사티아 방언의 변형이다.

베를린은 13세기에 처음 문서로 기록되었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무역로가 교차하면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 (1417-1701), 프로이센 왕국 (1701-1918), 독일 제국 (1871-1918), 바이마르 공화국 (1919-1933), 나치 독일 (1933-1945)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베를린은 계몽주의, 신고전주의, 자유주의 혁명의 과학적, 예술적, 철학적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륀더차이트 시대의 산업화로 인한 경제 호황으로, 베를린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1920년대 격동의 베를린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승전국의 점령 이후, 황폐해진 베를린은 분열되었다. 서베를린은 베를린 장벽(1961년 8월부터 1989년 11월까지)과 동독 영토로 둘러싸인 서독의 사실상 월경지가 되었다.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로 선포되었고, 본은 서독의 수도가 되었다. 1990년 독일의 재통일 이후, 베를린은 다시 독일 전체의 수도가 되었다.

베를린은 문화, 정치, 매체와 과학의 세계적인 도시이다. 베를린의 경제는 첨단 기술 기업과 서비스 분야를 기반으로 하며, 다양한 범위의 창조 산업, 스타트업, 연구 시설, 미디어 기업과 컨벤션 장소를 포괄한다. 베를린은 항공과 철도 교통의 대륙 허브 역할을 하며 매우 복잡한 대중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또한, 베를린 메트로폴리스는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베를린의 여러 주요한 산업으로는 IT, 의료, 의공학, 생명공학, 자동차, 건설, 전자, 사회적 경제와 청정 기술 등이 있다.

베를린에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 공과대학교, 베를린 자유대학교, 베를린 예술대학교, ESMT Berlin, 헤르티 스쿨, 바드 칼리지 베를린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이 있다. 베를린 동물원은 유럽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동물원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원 중 하나이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영화 스튜디오 단지인 바벨스베르크가 있는 베를린은 국제 영화 제작을 위한 장소로 점점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또한, 베를린은 축제, 다양한 건축물, 야간 유흥, 현대 예술, 그리 매우 높은 삶의 질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이후 베를린은 세계적인 기업가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를린에는 3개의 세계유산이 있다. 이 세계유산으로는 박물관섬, 포츠담과 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그리고 베를린 모더니즘 주택 단지가 있다. 다른 랜드마크로는 브란덴부르크 문, 국가의회 의사당, 포츠담 광장,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전승기념탑, 베를리너 돔,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인 베를린 텔레비전탑이 있다. 또한, 베를린에는 베를린성이 있는 박물관섬, 독일 역사박물관, 유대인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주립도서관, 국립 오페라, 필하모닉 관현악단, 베를린 마라톤 등의 수많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오케스트라와 스포츠 행사가 있다.

More about 베를린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3782202
  • 영역 891
기록
  •  국가의회 의사당 베벨 광장 – 아름다운 버디베어: 평화와 자유의 베를린의 상징...더 보기
     국가의회 의사당 베벨 광장 – 아름다운 버디베어: 평화와 자유의 베를린의 상징 Berlin bear figure Berlin Ampelmann초기 역사

    약 1,500년 전에는 현재의 베를린 지역에 다양한 슬라브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독일인 정착자들이 1100년대에 이 지역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베를린은 이때까지만 해도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고, 슈프레 강의 북동쪽 둑에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슈프레 강의 섬에서 쾰른 (Coelln)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두 마을은 통상의 중심지였다. 1307년에는 베를린과 쾰른이 그들의 공동 방어를 위한 연합을 설립하였고, 공통의 시청사를 지었다. 15세기에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주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15세기 후반에는 호엔촐레른 왕가가 베를린을 그들의 관저로 만들었다. 30년 전쟁 중에는 큰 피해를 입었고, 인구가 6,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

    베를린은 호헨촐레른 왕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래 다시 번영하였다. 그는 브란덴부르크주를 1640년부터 1688년까지 통치하였고, 산업을 촉진시키고 건설에 후원하였다. 그의 통치아래, 슈프레강과 오데르강 사이에 운하를 건설하였다. 170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1710년에는 베를린, 쾰른과 3개의 이웃 집단들이 통합하여 하나의 베를린을 이루었다. 1700년대에 베를린은 작은 읍에서 번영하는 통상과 제조업의 중심지로 증대하였다. 예술과 과학이 번창하였고, 산업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1806년부터 1808년까지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그가 떠나자 독일의 강국이 된 프로이센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그 후 1871년 독일 제국의 수도가 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독일의 수도였다. 도시의 인구는 1871년에 826,000명에서 1910년에 2,076,200명으로 늘어났다.

    불안한 시대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에 독일 제국이 무너졌고, 베를린은 새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 파업, 폭동,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도시는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베를린은 계속 자라났고, 1920년에는 베를린 대확장으로 7개의 도시들, 59개의 마을, 27개의 소유지가 베를린에 합쳐졌다. 1930년대에는 전 세계로 번져간 경제 대공황에 의하여 타격을 받아, 후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이 세워지는 원인이 되었다.

    분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 4개국이 독일을 점령한 것과 별개로 베를린도 4개로 나뉘었다. 독일이 분단되면서 베를린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되었다. 서베를린은 서독과는 다른 서방 연합군의 점령지로 간주되었으나, 행정권은 서베를린에서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독의 수도가 될 수 없었고 분단기 서독의 실질적인 수도는 본이었다. 한편 동베를린도 소련군의 점령지로 간주되었으나, 사실상 동독의 수도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냉전 시기 서베를린은 동독으로 둘러싸인 자유 진영의 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동베를린 시민들이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서 동독 정부는 1961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웠다. 이는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빌리 브란트는 바로 이 때 서베를린의 시장직을 역임했다.

    이 냉전 시기의 영향으로 인해 서독의 항공 허브로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등이 번성하게 됐고, 베를린은 지금도 항공 교통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편이다.

    통일 이후 독일의 수도

    1989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해체되고, 1990년 독일이 전격적으로 통일되면서 베를린은 연방 주 지위를 얻었다. 도시이자 독일의 연방주인 곳은 함부르크와 브레멘뿐이다. 분단 이전부터 수도였기에 별다른 이견 없이 1991년에 수도로 확정되었다. 현재 시장은 미하엘 뮐러(2014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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