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은 17세기 말에 세워졌으며, "검은 금"을 뜻하는 말인 오루프레투는 포르투갈 식민지 당시 18세기에 금 열풍이 불어 닥칠 때 중심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 식민지 당시의 건물들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최근에 건설된 것도 약간 섞여 있다. 최근에 건설된 것은 반드시 도시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전통적인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이 마을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금장식된 18~19세기 교회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17세기의 금 채굴로 인한 엄청난 부는 유럽의 부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철학과 미술이 번성했으며, 부활한 바로크 양식(브라질어:Barroco Mineiro)이 건축물 뿐 아니라 조각, 그림, 음악, 시 등 전반적인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1789년에, 오루프레투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려는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나, 실패하였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티라덴테스(포르투갈어:Tiradentes)는 다른 혁명을 막으려는 포르투갈 정부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1876년에는 미나스 학교(포르투갈어:the Escola de Minas)가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브라질에서 많은 광물 발견을 하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오루프레투는 1822년부터 1897년까지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주도였으며, 주도는 나중에 신도시인 벨루오리존치로 옮겨졌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