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ralia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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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 of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영어: Commonwealth of Australia), 줄여서 오스트레일리아, 혹은 호주(豪州)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본토와 태즈메이니아섬,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주권국이며 오세아니아에서 1번째, 세계에서 6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다. 북쪽에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파푸아뉴기니, 북동쪽에는 솔로몬 제도와 바누아투, 누벨칼레도니,피지,나우루 그리고 남동쪽에는 뉴질랜드가 있다. 수도는 캔버라이고, 주요 도시로는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호바트, 퍼스, 골드코스트, 애들레이드 등이 있다.

More about 오스트레일리아

Basic information
  • Currency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 Native name Australia
  • Calling code +61
  • Internet domain .au
  • Speed limit 50
  • Mains voltage 240V/50Hz
  • Democracy index 8.96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26473055
  • 영역 7692024
  • Driving side left
기록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배서스트섬의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65,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현재의 남아시아 지역에서 육교를 이용하거나 좁은 바다를 건너 이주했다....더 보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배서스트섬의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65,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현재의 남아시아 지역에서 육교를 이용하거나 좁은 바다를 건너 이주했다. 아넘랜드(Arnhem Land)의 마제베베(Madjedbebe) 바위 은신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간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유골은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조상인 멍고인으로, 약 4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이다. 유럽인들이 처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접촉했을 때, 이들은 복잡한 경제와 사회를 동반한 수렵채집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며,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약 75만명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대지에 대한 경외심과 몽환시를 바탕으로 영적 가치를 지닌 구전문화를 가지고 있다. 토레스 해협인, 민족적으로 말레이시아인은 계절 원예와 바다의 자원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북쪽 해안과 바다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에서 온 마카사르 어부들에 의해 간간히 종종 방문되기도 했다.

    유럽인들의 도착
     
    1770년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에 상륙한 선장 제임스 쿡
     
    1813년까지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항해 경로
      1606년 빌렘 얀스존
      1606년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
      1616년 딕 하토그
      1619년 프레더릭 드 하우트만
      1644년 아벨 타스만
      1696년 윌리엄 드 블라밍
      1699년 윌리엄 댐피어
      1770년 제임스 쿡
      1797–1799년 조지 배스
      1801–1803년 매슈 플린더스

    최초로 기록된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본토 관측과 상륙은 네덜란드인에 의한 것이다(1606). 네덜란드 항해사 빌렘 얀스존이 이끄는 다프켄 호는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을 측량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만났다. 그는 1606년 초에 케이프요크반도의 해안을 관측하고 2월 26일에 케이프 요크 웨이파의 현대 마을 부근의 페네파더 강(Pennefather River)에 상륙했다. 다음 해에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Luís Vaz de Torres)가 토레스 해협 제도를 항해했다.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에 서쪽과 북쪽의 모든 해협을 측량하고 "뉴 홀란드(New Holland)"라고 이름 붙였지만 정착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탐험가 윌리엄 댐피어는 1688년에 해적 선장 존 리드(John Read) 밑에서 일하는 동안 뉴 홀랜드의 북쪽 해안에 상륙했고, 1699년에 돌아오면서 다시 상륙했다. 1770년에는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지도화했는데, 그는 이 해안을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명명하고 대영제국에 보고했다.

    1783년에 미국 식민지를 잃은 영국 정부는 뉴사우스웨일즈에 새 유형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의 지휘아래 "제1함대(the First Fleet)"로 불리는 함대를 보냈다. 캠프는 1788년 1월 26일(훗날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경일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이 된다.) 포트잭슨만의 시드니 코브에 세워졌다. 영국 정착지는 반 디멘의 땅(Van Diemen's Land),현재의 태즈메이니아에 세워졌고, 1825년에 별도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1828년 공식적으로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스완 리버 식민지)의 서부 지역의 권리를 주장했다. 뉴사우스웨일즈의 일부는 각각 1846년에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1851년에 빅토리아, 1859년에 퀸즐랜드의 식민지로 분리되었다. 노던 테리토리는 1911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분리되며 설립되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유 지역(free province)"로 설립되었으며, 다른 주들과 달리 유형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빅토리아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찬가지였으나, 나중에 죄수들을 수용했다. 뉴사우스웨일즈의 정착민들에 의한 캠페인은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죄수 수송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마지막 죄수선은 1848년에 도착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인구는 150년간 정착민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인해 감소했다. 또한 천명이 넘는 원주민들은 정착민들과의 오스트레일리아 국경 전쟁(the Australia Frontier Wars)으로 인해 사망했다. 1869 원주민 보호법(Aboriginal protection Act)에서 시작된 정부의 "동화"정책은 "빼앗긴 세대(the Stolen Generations)"라고 일컬어지는수많은 원주민 아이들을 그들의 가족과 사회에서 격리했고, 이 또한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되었다. 1967년 국민투표 결과, 특정 인종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는 연방정부의 권한이 확대되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토지 소유권("원래 소유권")은 1992년 마보 대 퀸즐랜드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제2호)이 영국 정착 당시 오스트레일리아가 테라 무효라는 법적 교리를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식민지의 팽창

    1813년에 그레고리 블랙스랜드(Gregory Blaxland), 윌리엄 로슨(William Lawson), 윌리엄 웬트워스(William Wentworth)는 시드니 서쪽의 블루마운틴을 건너 유럽 정착지를 개방했고, 1824년에는 해밀턴 흄(Hamilton Hume)과 전 영국 해군 대위 윌리엄 호벨(William Hovell)이 식민지 남쪽의 새로운 방목지와 뉴사우스웨일즈 서부의 강을 찾기 위해 탐험을 떠났다. 1826년 에드먼드 록키어(Edmund Lockyer) 소령이 킹 조지 사운드(King George Sound), 지금의 올버니에 정착지를 설립하면서 영국의 권리 주장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체로 확대되었다. 1850년까지 내륙의 거대한 땅들은 여전히 유럽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여전히 농업과 과학적 발견을 위한 새로운 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골드 러시는 1850년대 초에 시작되었고, 광업 수수료에 대한 유레카 반란이 시민 불복종의 초기 표현으로 나타났다. 1855년에서 1890년 사이에 6개의 식민지가 정부로부터 독립된 권리를 얻었고, 대영제국의 일부로써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관리했다. 런던의 식민지 사무소는 외교 문제, 방위 문제, 무역 문제를 통제했다.

    국가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 위치한 ANZAC 스퀘어

    1901년 1월 1일, 10년간의 계획, 협의, 투표 끝에 식민지의 연방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세워졌다. 연방 수도 준주(Federal Capital Territory), 훗날의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는 현재 캔버라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캔버라가 건설되는 1901년에서 1927년까지는 멜버른이 임시 수도의 역할을 했다. 노던 준주는 1911년에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통제에서 연방 의회로 권력이 이전되었다.

    1914년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물러나는 연방자유당(Commonwealth Liberal Party)과 새로 집권한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의 지지를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군은 서부전선의 주요 전투에 참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416,000명의 오스트레일리아군이 참전해 60,000명이 전사했고, 152,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많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갈리폴리에서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군단(ANZACs,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패배를 국가의 탄생으로 여기며, 이 전쟁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첫 번째 군사 행동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코코다 트랙 작전(Kokoda Track Campaign) 또한 국가를 정의한 갈리폴리 전투와 유사한 사건이다.

    1931년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헌법상 연관을 종료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를 1941년에 수용했으나, 이는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오스트레일리아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의 타당성을 확인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벌어진 영국의 패배와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 인한 충격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을 새로운 동맹이자 보호자로 여기게 했다. 1951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는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에 속하는 미국의 동맹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 본토에서의 이민을 장려했다. 1970년대부터 후술할 백호주의가 폐지될때까지 아시아와 그 외 지역에서의 이민 또한 장려되었다. 이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 문화, 자아가 크게 바뀌었다.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법(Australia Act 1986)의 통과는 영국 정부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역할을 차지할 가능성을 끝냈으며, 간간히 쓰이던 영국 추밀원의 재판상의 상소 선택권도 빼앗았다. 1999년의 국민투표에서는 투표자의 55%와 모든 주의 대다수가 오스트레일리아 의회의 양원에서 3분의 2의 투표로 대통령이 지명된 공화국이 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1972년 도날드 혼(Donald Horne)의 랜드마크 비평서 The Lucky Country(1964년)와 휘틀람 정부의 당선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의 전통적인 동맹국 및 교역 파트너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외교 정책의 초점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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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rasebook

안녕하십니까
Hello
세계
World
안녕하세요 세계
Hello world
고맙습니다
Thank you
안녕
Goodbye
Yes
아니
No
잘 지내고 있나요?
How are you?
좋아, 고마워
Fine, thank you
얼마예요?
How much is it?
Zero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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