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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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 of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말레이어: Malaysia)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연방제 입헌 군주국이다. 말레이시아는 13개의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고, 남중국해로 나뉜 말레이반도 지역과 보르네오섬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해상 국경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필리핀과 맞대고 있다.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지만, 연방정부는 푸트라자야에 있다. 그리고 다리를 통해 싱가포르와 연결된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18세기부터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된 말레이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영국의 식민지가 된 곳은 해협식민지로 불리었고, 다른 곳들은 보호령이 되었다. 1946년 말레이반도의 주들이 연합하여 말라야 연합을 세웠고, 1948년 연합을 재편성하여 말라야 연방이 설립되었다.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은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와 연합하면서 Malaya란 이름에 si를 추가해 Malaysia가 되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65년, 싱가포르는 정부와의 마찰로 연방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독립 이후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제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50년동안의 GDP 성장률이 평균 6.5%라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천연 자원에 거의 의존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과학, 관광, 무역, 의료관광 등의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인 군주(국왕)은 9개 주에 있는 술탄에 의하여 5년에 한 번씩(단, 궐위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 호선으로 선출한다. 군주의 칭호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이며, 지금 군주는 파항주의 술탄 압둘라이다. 정부의 장은 수상이다. 정부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가깝고, 법체계는 ...더 보기

말레이시아(말레이어: Malaysia)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연방제 입헌 군주국이다. 말레이시아는 13개의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고, 남중국해로 나뉜 말레이반도 지역과 보르네오섬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해상 국경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필리핀과 맞대고 있다.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지만, 연방정부는 푸트라자야에 있다. 그리고 다리를 통해 싱가포르와 연결된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18세기부터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된 말레이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영국의 식민지가 된 곳은 해협식민지로 불리었고, 다른 곳들은 보호령이 되었다. 1946년 말레이반도의 주들이 연합하여 말라야 연합을 세웠고, 1948년 연합을 재편성하여 말라야 연방이 설립되었다.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은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와 연합하면서 Malaya란 이름에 si를 추가해 Malaysia가 되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65년, 싱가포르는 정부와의 마찰로 연방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독립 이후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제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50년동안의 GDP 성장률이 평균 6.5%라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천연 자원에 거의 의존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과학, 관광, 무역, 의료관광 등의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인 군주(국왕)은 9개 주에 있는 술탄에 의하여 5년에 한 번씩(단, 궐위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 호선으로 선출한다. 군주의 칭호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이며, 지금 군주는 파항주의 술탄 압둘라이다. 정부의 장은 수상이다. 정부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가깝고, 법체계는 영국의 법에 기초한다. 말레이시아는 민족과 문화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교는 이슬람교이지만,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유라시아 본토의 최남단 지역인 탄중피아이가 있고, 적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열대 기후의 국가이다. 다양한 동식물군이 있어 생물 다양성이 큰 국가이다. ASEAN, 이슬람 회의 기구의 창립멤버이며, APEC, 영국연방,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다.

2018년을 기점으로 말레이시아의 구매력 평가는 1인당 $30,860로 평가되었다.

More about 말레이시아

Basic information
  • Currency 말레이시아 링깃
  • Calling code +60
  • Internet domain .my
  • Mains voltage 240V/50Hz
  • Democracy index 7.19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32447385
  • 영역 330803
  • Driving side left
기록
  • 식민지배 이전
    식민지배 이전

    약 4만년 전 지금의 말레이시아 땅에 인류의 거주지들이 형성된 기록이 있다.[1] 이는 말레이시아가 신생국가가 아님을 증명한다. 현재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해당되는 말레이 반도의 첫 정착민은 검은 피부를 가진 네그리토로 추정된다.[2] 기원후 시대 초기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의 말레이 반도는 동서양 무역상 및 여행객들의 장소였는데, 2~3세기경 그들은 이곳에 무역항과 해안 마을을 건설했다. 그 결과 인도 및 중국 문화가 현지 문화에 강한 영향을 끼쳤고,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유입된 힌두교와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 4~5세기경 산스크리트어로 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3] 2세기 무렵 말레이 반도 북부의 랑카수카 왕국이 번창하기 시작했으며 15세기까지 존속했다.[4] 7~13세기 말레이 반도 남부 해안 지역은 스리비자야 제국의 일부였다. 스리비자야 제국의 멸망 이후 등장한 마자파힛 제국은 말레이 반도와 말레이 제도 일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5] 14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이슬람교를 소개하면서[6]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7]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는 시초가 되었다. 15세기 초 구 스리비자야 제국의 왕자였던 파라메스와라가 지금의 말라카 지역에 말레이 반도 최초의 독립 국가로 간주되는 말라카 술탄국을 건설했다.[8] 지리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말라카는 당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써 매우 크게 번영했다.

    식민통치 시절 Dutch architectures 스타튀는 1650년 네덜란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이 번영의 말라카도 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과 함께 몰락했다.[7] 포르투갈이 침공한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권을 확장하는 한편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말라카 주민들은 포르투갈의 통치에 강력하게 저항했으며, 1641년 이 지역을 노린 네덜란드의 침공으로 포르투갈의 지배도 끝이 났다. 이어 네덜란드의 지배가 시작되었으나, 1786년 크다의 술탄이 피낭을 영국령 동인도 회사에 양도하면서 대영제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1819년 싱가포르를 획득했고,[9] 이후 기존에 말라야를 지배하던 네덜란드와 마찰이 발생하자 1824년 영국-네덜란드 협정을 맺어 세력범위를 확정했다. 이 협정에 따라 영국은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해서 북부는 영국이, 남부는 네덜란드가 지배하도록 했는데 말라카는 영국이 가져가는 대신 자신들이 지배하던 벤쿨렌(방카훌루)을 네덜란드에 양도했다. 이후 영국의 세력범위는 영국령 말라야라 하여 오늘날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되었고 네덜란드의 세력범위는 네덜란드령 인도라 하여 오늘날의 인도네시아가 되었다.

    1826년 영국은 피낭, 말라카, 싱가포르, 라부안을 직접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직할식민지의 일종인 해협 식민지를 건설했다. 20세기 무렵 파항, 슬랑오르, 페락, 느그리슴빌란으로 구성된 연합 말레이 주에 영국이 눌러앉기 시작했는데 각 주의 말레이 지도자들이 자신들과의 협정을 거부할 것이 확실해지자 그들을 조언해 영국 지도부를 임명하게 했다.[10] 나머지 5개 주는 비연합 말레이 주라 하여 영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았는데 20세기 영국인 조언자가 있게끔 전환되었다. 19세기까지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의 발전은 대개 큰 관련이 없었다. 영국은 지배 기간 동안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된 노동자들의 이민을 장려했다.[11]

    현재 사바주에 해당되는 지역은 1877년부터 1878년 사이 브루나이와 술루의 술탄이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면서 영국령 북보르네오가 되었다.[6][12] 지금의 사라왁주에 해당되는 지역은 영국 모험가인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1842년 브루나이 술탄으로부터 양도받은 뒤 사라왁 왕국이 되었으며, 1946년 직할식민지로 개편될 때까지 백인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13]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말라야, 북보르네오, 사라왁, 싱가포르를 점령했으며, 1945년 항복할 때까지 3년간 통치했다. 비록 3년으로 말레이시아를 지배한 그 어떠한 나라보다도 짧게 통치했지만, 더 잔인했으며, 특히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일본은 이 지역의 중국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중국인뿐 아니라 청년들은 태국을 거쳐 미얀마까지 이어지는 철로를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막노동에 영양 실조 등으로 희생되어 이 철로는 '죽음의 철로'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으며 식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음으로써 경제난에 시달렸다. 이 무렵 공산주의자들의 산악전이 시작되었고, 한편으로는 인종적 긴장 상태 및 민족주의가 성장하였다.[14] 민중의 항의가 이어졌으며,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영국이 재점령했다.[15] 이에 민족주의가 더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독립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말라야 연합에서 독립까지

    영국의 재점령 이후 영국은 1946년 싱가포르를 제외한 영국령 말라야 지역에 직할 식민지인 말라야 연합을 건설했다. 말라야 연합의 이민법은 출생지주의(jus soli)를 강조했는데, 이 이민법에 따라 말레이인 또는 말라야 연합 및 싱가포르 출신자들은 자동으로 시민권이 주어지며, 중국인(명나라, 청나라 출신) 및 인도인(영국령 인도 출신) 등 외족도 1942년 2월 15일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으면 시민권이 주어졌다. 이민법은 모든 민족에게 평등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던 말레이인들은 이 결과로 외국인들의 힘이 세져 자신들의 지위가 더 추락할까봐 두려움을 느꼈으며, 말레이인들의 상징이었던 술탄제를 폐지함으로써 말레이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되었다. 결국 말라야 연합은 해체되었고, 대신 1948년 말라야 연방이 결성되었다. 이후 말레이인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이 시작되는 가 하면 영국의 보호 아래 말레이 주의 지도자들의 자주성을 회복시켰다.[16] 이 무렵 말라야 공산당(PKM) 소속 중국계 게릴라들이 영국을 자국에서 축출하는 목적으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에 동년 말라야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영국 연방 국가들의 병력을 동원해 이들을 진압하였다. 비상사태는 독립 후인 1960년까지 지속되었다.[17] 말라야의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져 1955년 총선이 실시되었고, 이어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현대의 역사  1963년 9월 16일 툰 푸아드 스테픈스(좌)가 당시 말라야 연방의 부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우)과 무스타파 하룬(우측 두번째)과 함께 제셀턴의 파당 머르데카에서 말레이시아의 탄생을 선언했다.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지도자였던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 초대 총리가 되었으며, 느그리슴빌란 주의 최고지도자(Yang di-Pertuan Besar; 종종 '술탄'으로 간주됨)였던 투앙쿠 압둘 라만(Tuanku Abdul Rahman)이 초대 국왕이 되었다. 말라야 인들의 소원이었던 독립을 쟁취했으나, 갈 길은 멀고 험난했다. 나라 안은 말레이인과 중국인 등 민족간의 갈등이 심했고, 말라야 연방 홀로는 국제 사회에 나설 수 없었다. 또한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될 만한 자원이 부족했고, 원주민의 수가 부족하여 말레이인들을 우대하는 데 크게 불리했다. 마침 영국의 또다른 식민지였던 북보르네오, 사라왁, 싱가포르, 브루나이에서도 독립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말라야 연방 정부는 이 지역에 자국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당초 브루나이가 먼저 동의함으로써 1961년 말라야 연방의 가입했으나, 석유라는 최고의 경제적 조건을 갖춘 브루나이는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쇠퇴할 것을 우려, 1년만에 탈퇴했다. 한편 북보르네오(사바), 사라왁, 싱가포르는 당초 이를 고사했으나, 싱가포르가 가입을 결정했고, 싱가포르와 깊은 인연이 있던 북보르네오와 사라왁도 가입을 결정했다. 1963년 세 나라 모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9월 16일 현재의 말레이시아 연방을 성립하였다.[18]

    말레이시아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가 말레이시아를 결성했다. 2년 뒤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현재의 말레이시아로 지속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0개 회원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압둘 라만 1차 내각  툰쿠 압둘 라만

    1957년 독립한 말라야 연방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툰쿠 압둘 라만은 말라야 연방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싱가포르, 사라왁, 북보르네오(사바)에 자국 가입을 요청했다. 이리하여 1963년 9월 16일 지금의 말레이시아가 출범했고, 그는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라만 정부는 지배계층이며, 말레이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들을 우대했다. 이는 낮은 경제수준으로 사회에서 밀릴 걸 우려한 말레이인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인들이 다수를 점한 싱가포르 주의 반발을 가져왔다.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중국인도 말레이 원주민과 같은, 엄연한 부미푸트라이다"라고 주장했으며,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강조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전체를 두고 보면,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결과 싱가포르 주정부와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 간의 마찰이 빚어졌다. 1964년 싱가포르에서 인종 폭동이 발생했고, 양측 간의 골이 깊어지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며 자국에서 추방키로 했다. 1965년 싱가포르 정부는 말레이시아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8월 9일 말레이시아에서 완전히 독립했다(싱가포르 입장에서 보면, 원치 않은 독립이다).[19]

    라만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말레이시아는 출범 이후 국제적 지위가 높아졌고, 1967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5개국이 가입한 ASEAN의 결성을 실현하였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국부로 추앙받았으나, 인종 대립이 심해져 1969년 5월 13일 대폭동으로 이어졌다(일명 5·13 사건).[20] 동년 총선에서 집권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은 많은 의석을 잃었고, 국민들은 물론 당 내에서도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만은 계엄령을 선포해,[20] 철권을 휘두르는 등 독재자로 변모했다.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졌으며, 1970년 총리직을 사임했다. 부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이 총리직을 승계했다.

    압둘 라작 2차 내각  압둘 라자크 후세인

    1970년 신임 총리에 취임한 압둘 라작은 집권 후 사회의 안정을 목적으로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에 의한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했으며,[21] 반대파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민주적인 정치 참여가 인종간의 갈등을 조장한다며 말레이시아를 비정치화했고,[21] "평화를 원한다면 BN"을 택해라" 등으로 국민들을 위협하고 중국인들의 시위를 비합법화했다.[21] 라작 정부는 기존의 말레이인 우대 정책으로는 실효가 없다고 판단, 이른바 '부미푸트라 정책'을 작성했는데 이에 따라 말레이인들을 우대하고 외국인들의 이민을 제한하여 현재 말레이시아의 폐쇄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모습을 구축했다. 말레이인들과 무슬림들은 정치적으로 우대를 받는 가 하면, 인종 분쟁을 해소하려 했으나 오히려 조장해,[21] 현재 중국인들이 말레이인에 대한 반감을 갖는 요인이 되었다. 라작 정부는 부미푸트라 정책을 실현에 옮기고자 했으나, 1976년 1월 14일 라작이 급서하면서[22] 무산되고 만다. 부총리 후세인 온이 총리직을 승계했다.

    후세인 온 내각  후세인 온

    라작의 뒤를 이은 후세인 온은 라작이 두고 간 부미푸트라 정책을 실현에 옮겼으며, 이에 따라 말레이인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외국인들의 유입을 차단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정치적 단결을 강조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고,[23] 1981년 4월 20일 통합국민신뢰계획을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인종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후세인 온은 부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와 종종 마찰을 빚었으며, 마하티르의 도움을 받아 이뤄낸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후세인의 건강은 매우 악화되었으며, 7월 17일 총리직을 사임[23] 함에 따라 마하티르가 총리직을 승계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내각  마하티르 빈 모하맛 마하티르 과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2003년 8월 5일)

    1981년 7월 17일 새 총리로 임명된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대대적인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쳤다.[24] 기존 잔인과 독재로 얼룩진 통치에서 벗어나 부분적인 유화조치를 펼쳤는데, 일례로 국가보안법 수감자 21명을 석방했다.[25] 집권세력의 확장을 위해 ABIM의 지도자였던 안와르 이브라힘을 UMNO로 편입시켰으며,[26] 이듬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27][28] 각 주의 지도자인 술탄 간의 대립을 완화시켰고,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현재 말레이시아가 산업대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종 분쟁을 줄이기 위해 부미푸트라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방식으로 인종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1990년대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인구 과밀화를 막고 분산시키기 위해 수도 천도 정책을 펼쳐, 행정 수도인 푸트라자야가 새로 설치되었다.

    재직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른바 '신흥 중진국'으로 떠올랐다, 이로써 '현대화의 아버지' 등으로 칭찬을 받았으나.[29]

    2003년 경제 발전의 또다른 일원으로 중학교에서 수학과 과학 과목을 영어로 전환했으며, 동년 10월 31일 22년의 장기집권을 마치고 퇴임했다.[30]

    압둘라 바다위 내각  압둘라 바다위

    2003년 10월 31일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가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재직 중 초등 교육을 무상·의무화 하여 가난한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 결과 말레이시아인의 문해율과 교육률은 크게 향상되었다. 이 결과로 '인적자원 개발의 아버지'로 호칭되었다. 그는 민족의 단결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정책을 펼쳤으나, 여전히 말레이인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사회의 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져 민주화라는 큰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편 2008년 마하티르 정권 시절 투옥된 안와르 이브라힘의 집행유예기간이 만료되면서 UMNO의 지지도가 야권으로 이탈하는 결과가 벌어졌다. 그 결과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개헌저지선을 초과하면서 UMNO의 패배를 가져왔고, 당 내에서 나온 사임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2009년 총리직을 사임했다.

    나집 라작 내각  나집 라작

    2009년 4월 3일 나집 라작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제2대 총리 압둘 라작의 아들이며, 유력 정치 가문 출신으로 주목받았다. 취임 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는데, 예를 들어 말레이인들을 지나치게 우대했던 부미푸트라 정책의 완화를 추진해 외국인들에게 지나쳤던 차별을 대폭으로 완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정책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며, 종종 민주화 시위에 직면해오고 있다. 부정 선거 관행을 고치고 있지 않아, 2013년 총선에서 야권이 더 많은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와 게리맨더링으로 UMNO의 재집권을 이끌었다. 한편 완화를 추진하던 부미푸트라 정책을 다시 강화해 더 강력한 인종차별과 이민제한을 추진하고 있으며, '악법'으로 꼽혀온 국가보안법을 폐지한 대신 새로운 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선동처벌법 강화 등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 그는 말레이시아를 UMNO의 일당독재체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2015년 국영기업 1MDB와 연계된 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야권 인사들과 국민들의 큰 저항에 맞부딪치고 있으며, 8월부터 9월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 단체 버르시 4.0 등의 시위 등, 나집 정부는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마하티르 전 총리가 동참하는 등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7월 1MDB 스캔들에 관해 해명을 요구한 관계로, 무히딘 야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및 압둘 가니 파타일 검찰총장 등 일부 공무원들이 경질되었다.

    2018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총리 취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마자 조세포탈 및 세금 탈세 와 사기 혐의로 고소 당하여 명품가방과 자녀 가재도구 유체동산 등 가압류 가집행 처분을 받게 되어 경찰 수사 중이다[31][32].

    그 뒤인 2020년 7월 28일에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33][34][35][36][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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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법안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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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텍스트 말레이시아 관계 계약 

    영어 텍스트 말레이시아 관계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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