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 of 이스탄불

이스탄불(튀르키예어: İstanbul)은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이다. 행정 구역상 이스탄불주에 속해 있다. 터키 서부에 있고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 있다. 역사, 상업적인 중심지는 유럽 지구에 있으며, 인구의 1/3은 아시아 지구에 거주한다. 위도는 북위 약 41도로, 한여름 평균 기온은 섭씨 29도, 한겨울 평균 기온은 4도이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중동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으며, 오스만 제국 때까지 수도로 존속하다가 현재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23년 이후로는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었다. 2015년의 인구 수는 14,025,646명이다. 이스탄불은 2010년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고, 2012년 유럽의 스포츠 수도로 지정되었다. 1985년 유네스코는 이스탄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사라이부르누(Sarayburnu)에 기원전 667년경에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로, 이스탄불은 전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동양과 서양이 이어져 만나는 곳으로, 로마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실크로드의 가장 서쪽이며 바스라와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이스탄불은 또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역사 도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거의 1600년 동안 여러 국가의 수도였다. 오랫동안 로마 제국(330년~1204년, 1261년~1453년)의 수도였고, 잠시 라틴 제국(1204년~1261년)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Konstantinoúpolis; 라틴어: ...더 보기

이스탄불(튀르키예어: İstanbul)은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이다. 행정 구역상 이스탄불주에 속해 있다. 터키 서부에 있고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 있다. 역사, 상업적인 중심지는 유럽 지구에 있으며, 인구의 1/3은 아시아 지구에 거주한다. 위도는 북위 약 41도로, 한여름 평균 기온은 섭씨 29도, 한겨울 평균 기온은 4도이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중동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으며, 오스만 제국 때까지 수도로 존속하다가 현재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23년 이후로는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었다. 2015년의 인구 수는 14,025,646명이다. 이스탄불은 2010년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고, 2012년 유럽의 스포츠 수도로 지정되었다. 1985년 유네스코는 이스탄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사라이부르누(Sarayburnu)에 기원전 667년경에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로, 이스탄불은 전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동양과 서양이 이어져 만나는 곳으로, 로마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실크로드의 가장 서쪽이며 바스라와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이스탄불은 또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역사 도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거의 1600년 동안 여러 국가의 수도였다. 오랫동안 로마 제국(330년~1204년, 1261년~1453년)의 수도였고, 잠시 라틴 제국(1204년~1261년)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Konstantinoúpolis; 라틴어: Constantinopolis)의 함락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1453년 ~ 1922년)도 수도로 정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터키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이스탄불로 개칭당하고, 앙카라로 천도하면서, 수도로서의 역할은 끝났다.

More about 이스탄불

Basic information
  • Native name İstanbul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14804116
  • 영역 5343
기록
  • 고대

    터키 정부는 최근 마르마라이 터널 공사 중 이스탄불 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발굴하였다. 기원전 657년 고대 그리스 메가라의 식민지로 건설되고 그들의 왕 비자스의 이름을 따 비잔티온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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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터키 정부는 최근 마르마라이 터널 공사 중 이스탄불 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발굴하였다. 기원전 657년 고대 그리스 메가라의 식민지로 건설되고 그들의 왕 비자스의 이름을 따 비잔티온이라 불렸다.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거쳤고,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자치 도시가 되었다.[1] 기원전 1세기에 로마 제국의 세력권에 편입되었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라틴어 이름인 비잔티움으로 불렸다.

    196년 비잔티움은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비루스와 시리아 총독 페스켄니우스 니게르의 항쟁에 휘말려 황제군 손에 철저히 파괴되었다가 몇 년 후 훨씬 크게 재건되었다.

    전성기와 콘스탄티노폴리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분열된 제국을 재통일하고 330년 5월 11일 이 도시를 새로운 수도로 선포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라틴인들이 정복하여 잠시 라틴 제국을 세웠다. 1261년 로마 제국의 계승국 중 하나인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후 로마 제국을 재건했다.

    그러나 라틴 제국의 지배 여파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교회, 방어 시설, 기본 서비스 등이 모두 파손됐고, 인구는 40만 명 정도(950년)에서 4만 명까지 줄어들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라틴인,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특히 오스만 제국에 부단히 위협받았다.

    1453년 로마의 영토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주변에 그칠 정도로 매우 줄어들었고 같은 해 5월 29일 마침내 오스만에게 동로마가 소멸당하고 2000여 년 역사에 종말을 고했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한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에디르네(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즉시 천도하고, 정교회의 아야소피아를 포함한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개조했다.

    그는 도시 재건을 위해 병원, 학교, 상업 지구를 대거 건설하고 로마 제국이 만든 수도를 보수하는 등 도시 인프라를 부활시켰다. 피정복자였던 기독교도에게는 딤미(공인 이교도)로서 일정한 자유를 보장해 주어 도시에 계속 살게 해 주는 한편 아나톨리아에 거주하던 이슬람교도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각 구역에는 술탄이나 귀족 같은 유력자가 설립한 모스크와 공공 시설이 설립·정비되었다.

    이슬람교도에 의한 차별과 억압은 있었지만, 기독교인 교회와 유대인 회당도 어느 정도 유지되어 이스탄불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튀르크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서유럽 각국에서 온 상인과 사절 등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다문화 도시이자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도약했다.

    1478년 황제가 머무는 톱카프 궁전이 완공되었다. 톱카프는 대포의 문이라는 뜻이다. 부지 면적이 모두 7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이 궁전은 이후에도 증개축을 반복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건축 양식이 섞인 독특한 건물이 되었다. 오스만제국은 지중해와 발칸반도의 패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과 대립하면서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1]

    1520년 즉위한 쉴레이만 1세는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를 구축했다. 1557년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설계한 술레이마니예 모스크가 이스탄불 중심부에 건설됐다. 쉴레이만 1세의 이름을 딴 이 모스크는 높이 54미터, 직경 27미터의 거대한 돔을 만들고 건물을 에워싼 네 개의 미나레트 표면도 치밀하게 장식했다. 16세기에 이스탄불 인구는 70만 명에 달했다.[1]

    1616년에는 시난의 문하생인 메메트 아아가 건축을 담당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통칭 블루 모스크)가 완성됐다. 통상적으로 모스크에는 건물을 둘러싼 첨탑을 네 개까지 만들지만 이 모스크에는 여섯 개를 세웠다. 이스탄불이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성지 메카에 있는 모스크보다 더 많은 첨탑을 세운 것이다.[1]

    17세기 이후, 서구 국가들의 주요 교역 활동 무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지중해 도시들의 중요성이 약해졌다. 그러나 이스탄불은 여전히 서구 열강들의 중동 진출 거점으로 주목받았다. 1883년 이스탄불에서 독일의 뮌헨, 프랑스 파리를 잇는 오리엔트 급행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1]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자, 영국, 프랑스, 그리스 등 연합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했다.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등이 이끄는 국민군이 맞서 싸워 이들을 물리쳤다. 황제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결국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었다.

    터키 공화국 수립 이후
     
    이스탄불의 풍경

    터키 공화국이 설립된 후 1923년 수도를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에 있는 도시 앙카라에 내주게 됐다. 이로써 이스탄불은 1600년 만에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터키 최대 인구의 상업 도시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이스탄불은 그리스어 이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쓰였고, 서구에서는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1924년에 와서야 이스탄불은 이 도시를 가리키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에 이스탄불은 현대화된 도시로 탈바꿈했다. 광장, 대로, 길이 새로 건설됐다.[2] 1970년대부터 아나톨리아 지방의 농촌인들이 이주하면서 이스탄불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다. 도시 외곽에 공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 가 나 다 라 마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0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텍스트가 없습니다 Keyder 1999, 11–2,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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