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ugal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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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 of 포르투갈

포르투갈 공화국(포르투갈어: República Portuguesa 헤푸블리카 포르투게자[*], 영어: Portuguese Republic), 약칭 포르투갈(포르투갈어: Portugal, IPA: [puɾtuˈɣaɫ], 문화어: 뽀르뚜갈)은 유럽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로, 이베리아반도의 서부와 북대서양 상의 군도들을 그 영토로 한다. 국토의 총 면적은 92,090 km2 로, 동쪽과 북쪽은 스페인, 서쪽과 남쪽은 대서양을 맞댄 대륙부와 대서양 상의 두 자치지역인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름은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라틴어 이름 "포르투스 칼레"(라틴어: Portus Cale)에서 유래하였다. 포르투갈은 온난한 항구라는 뜻이다.

오늘날 포르투갈의 국경 안에 포함된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계속 사람이 거주해 왔다. 갈라이키족과 루시타니족 같은 켈트인들은 후에 로마 공화정에 통합되었고, 이후 수에비족과 서고트족 같은 게르만족이 정착하였다. 8세기부터는 무어인이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기독교도의 헤콩키스타 도중에 초기엔 갈리시아 왕국, 후엔 레온 왕국의 일부로 포르투칼레 백국(포르투갈어: Condado de Portucale 혹은 Condado Portucalense)이 성립된다. ...더 보기

포르투갈 공화국(포르투갈어: República Portuguesa 헤푸블리카 포르투게자[*], 영어: Portuguese Republic), 약칭 포르투갈(포르투갈어: Portugal, IPA: [puɾtuˈɣaɫ], 문화어: 뽀르뚜갈)은 유럽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로, 이베리아반도의 서부와 북대서양 상의 군도들을 그 영토로 한다. 국토의 총 면적은 92,090 km2 로, 동쪽과 북쪽은 스페인, 서쪽과 남쪽은 대서양을 맞댄 대륙부와 대서양 상의 두 자치지역인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름은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라틴어 이름 "포르투스 칼레"(라틴어: Portus Cale)에서 유래하였다. 포르투갈은 온난한 항구라는 뜻이다.

오늘날 포르투갈의 국경 안에 포함된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계속 사람이 거주해 왔다. 갈라이키족과 루시타니족 같은 켈트인들은 후에 로마 공화정에 통합되었고, 이후 수에비족과 서고트족 같은 게르만족이 정착하였다. 8세기부터는 무어인이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기독교도의 헤콩키스타 도중에 초기엔 갈리시아 왕국, 후엔 레온 왕국의 일부로 포르투칼레 백국(포르투갈어: Condado de Portucale 혹은 Condado Portucalense)이 성립된다. 1139년 포르투갈 왕국의 성립과 1143년 독립 승인, 1249년 국경의 확립을 통해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국가로 거듭난다.

15세기와 17세기 사이에 대항해 시대 탐험의 결과로, 포르투갈은 서양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였고,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경제, 정치,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포르투갈 제국은 사상 첫 세계 제국이었고, 1415년 세우타 정복부터 1999년 마카오의 중국 반환까지 거의 600년 동안 이어진, 가장 오래 지속된 식민지 제국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국제적 중요성은 19세기, 특히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독립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공화국이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왕가는 추방되어 제1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권위주의 정권인 이스타두 노부가 형성되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대의 민주주의가 성립되었고,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이 종식되어 마지막 해외 주였던 모잠비크, 앙골라 등이 독립하게 된다.

오늘날 포르투갈은 비교적 HDI와 1인당 GDP가 낮지만 선진국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인간 개발 지수 역시 "매우 높음" 수준에 속한다. 삶의 질은 19위로, 세계적으로도 최상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가장 세계화되고 평화로운 나라에 속한다. 포르투갈은 국제 연합 (UN), 유로존, 솅겐 조약을 포함한 유럽 연합 (EU),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 경제 협력 개발 기구 (OECD),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CPLP)의 창립 회원국이며,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More about 포르투갈

Basic information
  • Currency 유로
  • Native name Portugal
  • Calling code +351
  • Internet domain .pt
  • Mains voltage 230V/50Hz
  • Democracy index 7.9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8857716
  • 영역 92225
  • Driving side right
기록
  • 초기 이주민족들
    초기 이주민족들
     
    에보라의 로마 비너스 신전.

    포르투갈의 선사시대는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함께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흔적은 약 2만 4,5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자취"가 공존하는 크로마뇽인으로, 이는 두 종 사이의 혼혈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는 또한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이 드러나는 가장 최근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마도 해당 종의 마지막 개체일 것으로 추정된다.[1] 약 서기 5500년 전에는 중석기 문화가 나타났다.[2] 신석기 시대에는 갈라이키족, 루시타니족, 코니족과 같은 부족들의 기원인 선켈트족과 켈트족이 점령하였고,[2] 페니키아인과[3] 카르타고인이 체류하였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45년 이후 처음 이 지역을 루시타니아로써 제국의 일부로 편입시켰고,[4] 비리아투를 우두머리로 한 저항을 진압한 뒤,[2] 도루강 북쪽의 갈라이키아(라틴어: Gallaecia)를 세웠다. 로마는 포르투갈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라틴어는 포르투갈어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5] 제국의 몰락과 함께, 서기 406년부터 이베리아반도로 반달족, 부리족과 같은 게르만족이 침공하였다. 이 중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은 이 지역에 첫 기독교 왕국을 세운다.[2] 711년 무어인인들은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해 알안달루스를 세웠다. 기독교도들은 이베리아반도 북쪽으로 모여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운다. 레콩키스타 중인 868년 포르투갈 백국이 성립된다.[6]

    왕국의 성립 및 공고화
     
    포르투갈의 요람으로 알려진 기마랑이스의 기마랑이스 성

    포르투갈 독립 훨씬 이전부터, 갈리시아 왕국과 포르투칼레를 통치하던 귀족들에 의해, 독립에 준하는 자치권 확대를 꾀한 시도들이 여러 번 있어왔다. 레온 왕국의 지배에 대한 지방 귀족들의 독립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는 당시 "포르투칼레 땅"을 포함하고 있던 갈리시아 백작령의 통치권을 부르고뉴의 하이문두(포르투갈어: Raimundo de Borgonha) 백작에게 양도하였다. 무어인에 대한 하이문두의 여러 차례의 군사적 실패 이후, 1096년 알폰소 6세는 하이문두의 사촌 동 엔히크 백작에게 갈리시아 백작령 남쪽 땅의 통치권을 양도하며, 포르투칼레 백작령이 세워졌다. 동 엔히크 백작의 통치 아래, 포르투칼레 백작령은 무어인들과의 전쟁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군사 정책은 물론, 가장 활발한 독립정책을 펼쳤다. 동 엔히크 백작이 죽은 뒤, 아들 동 아폰수 엔히크스가 권좌에 올랐고, 포르투갈은 산타렝, 리스본, 팔멜라, 에보라 등 주요 거점을 무어인들로부터 정복하는 한편, 1143년 사모라 조약을 통해 독립에 서명하였다.[7]

    1249년 포르투갈의 헤콩키스타가 끝났지만, 신생 왕국의 독립은 이웃 카스티야로부터 여러 차례 위협받았다. 첫 위기는 페르난두 1세의 왕위계승 문제로, 당시엔 알주바호타 전투의 승리로 위기를 넘기며 아비스 왕가가 성립되었다.[8]

    지리적 발견과 필리피나 왕가
     
    1498년 5월 20일 인도 캘리컷에 도착한 바스쿠 다 가마.

    15세기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로 알려진 해외 원정 및 확장을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항해왕자' 엔히크와 동 주앙 2세가 지도자로써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하였다. 포르투갈은 1415년 아프리카의 세우타를 정복하였고, 1434년 질 이아네스가 바다의 끝으로 여겨지던 보자도르 곶을 넘어가 아프리카 해안을 탐사하였고,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희망봉을 지나 대서양과 인도양이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였다.[9] 뒤이어 '행운왕' 마누엘 1세 통치기간에는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동양으로의 항로와 육지 등 대다수를 발견했다.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의 정복 덕분에 16세기 전반에 포르투갈은 아시아로 확장하는데 전력을 쏟는 한편, 1530년 동 주앙 3세가 브라질의 식민화를 시작하였다.[10]

    포르투갈은 1480년대부터 거의 100년 동안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578년 모로코 정벌에 나선 젊은 왕 동 세바스티앙과 상당수 포르투갈 귀족이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대패해 사망하면서 혼란에 빠졌고, 뒤를 이어 즉위한 추기경왕 엔히크도 2년 뒤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하였고, 1580년 스페인 국왕이 포르투갈의 왕을 겸하는 동군 연합(同君聯合)이 형성돼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필리피나 왕가"의 첫 왕인 "필리프 1세"로 즉위하였다.[11] 독립된 외교권을 상실하고 스페인과 묶인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와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인도양 독점무역이 깨지며 큰 퇴보를 겪게 된다.[12]

    이러한 스페인의 지배는 1640년 12월 1일 포르투갈 귀족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종식시켰고, 동 주앙 4세가 포르투갈의 왕으로 즉위하였다.[12]

    왕정복고와 절대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1640년 12월 1일 이후 "복고왕" 동 주앙 4세의 왕정복고 선언.

    1640년 12월 1일 포르투갈 독립운동 쿠데타 이후, 곧 스페인과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 전쟁은 1668년까지 가서야 리스본 조약을 통해 스페인이 포르투갈의 왕정 복고와 독립을 인정하며 끝나게 된다.[13]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전반기까지 브라질에서 금과 귀금속 등 광물이 발견되며 광산개발은 호황을 맞이했고, 이를 통해 동 주앙 5세 시기 포르투갈의 궁정은 유럽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호화로운 궁정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축적된 부는 주로 수입품을 지불하는데 사용되었는데, 특히 포르투갈 왕국 내에 직물 산업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직물을 잉글랜드로부터 수입을 하였고, 이로 인해 대부분이 잉글랜드로 빠져나가게 된다. 포르투갈의 대외 무역은 와인 산업에 기반하였고, 동 주제 통치기인 1750년에서 1777년 사이 재상을 지낸 폼발 후작은 이러한 상황을 전환하기 위해 중상주의적 개혁 등의 노력을 통해 왕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리스본과 알가르브를 폐허로 만든 1755년 11월 1일의 대지진이 발생하였다.[14]

     
    연대를 무시한 포르투갈 제국(1415~1999)의 지도.

    포르투갈은 잉글랜드와 동맹을 유지하고 대륙봉쇄령에 참여하길 거절한 이유로 인해 1807년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을 받는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 왕실은 1808년 브라질로 도피해 리우데자네이루로 수도를 옮긴다. 이러한 상황은 1816년부터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 왕국의 왕이 된 동 주앙 6세가 1821년 첫 헌법을 공포하기 위해 리스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듬해, 그의 아들인 동 페드루 4세는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하며 브라질 황제 동 페드루 1세로 즉위한다.[15]

    19세기의 남은 기간 동안 포르투갈은 내전과 9월 혁명, 마리아다폰트 혁명, 파툴레이아 전쟁 등 반복되는 반란과 무력 봉기와 같은 거대한 사회정치적 혼란기를 겪었으며, 1852년 헌장에 추가 법령이 더해지면서 겨우 정치적 안정과 재생 기간 중 주를 이룬 폰트스 페레이라 드 멜루를 앞세운 진흥 정책의 시작이 가능해졌다.[16] 19세기 말엽, 포르투갈의 식민지 야욕은 영국과 충돌했고, 이는 1890년 영국의 최후통첩의 원인이 되었다.[17] 영국의 요구에 대한 굴복과 점점 더 흔해져가는 경제 문제와 논란으로 인해 왕실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져갔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08년 2월 1일 국왕 동 카를루스와 왕세자 동 루이스 필리프가 암살된다. 마누엘 2세가 이끈 왕실은 2년을 더 유지하지만, 1910년 10월 5일에 일어난 1910년 10월 5일 혁명을 계기로 공화국이 수립되며 폐지된다.[18]

    공화국, 이스타두 노부와 민주주의
     
    이스타두 노부 (1932~1968) 시기 포르투갈을 통치한 안토니우 살라자르.

    1910년 10월 5일 공화국이 수립된 지 머지않아, 젊은 왕 마누엘 2세는 잉글랜드로 떠나게 된다.[19] 이 후 수년간 노동자 투쟁, 소요사태 ,봉기, 정치인 암살, 재정위기 등 정치적 혼란을 겪었고, 이러한 문제들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면서 더 깊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6년 군대가 권력을 쥐게된다. 군사 정권은 1928년 재무부 장관으로 코임브라 대학교의 교수였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를 임명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라자르는 1932년 각료회의 의장으로 임명된다.[20]

    살라자르는 재정을 회복하는 동시에, 단일 정당과 국영 노조를 가진 국가조합주의적 권위주의 정권 이스타두 노부 (신국가체제)를 수립하였고, 최소 1945년까지 파시즘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21] 이후 1968년 병으로 인해 권력에서 멀어지며, 마르셀루 카에타누가 살라자르의 뒤를 이었다.[22]

    살라자르 정권의 해외 주 탈식민지화에 대한 거부는 식민지 전쟁의 발발로 이어졌고, 1961년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를 시작으로 1963년 기니비사우, 1964년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안토니우 드 스피놀라 장군 등 몇몇 육군 원로 장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정책을 유지하는데 확고한 듯 하였다.[23] 해외 전쟁에서 군사적 해결책이 유지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자신의 책 "포르투갈과 미래"(포르투갈어: Portugal e o Futuro)로 인해 스피놀라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는 육군 내 청년 장교들의 늘어나던 불만을 가중시켰고, 이들은 1974년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24]

    이어 혁명 진행 과정(포르투갈어: Processo Revolucionário em Curso)이라 불리는 여러 사회정치적 세력간 매우 열띤 정치적 대립기가 나타났으며, 이는 포르투갈이 공산주의 방향의 새로운 독재기로 빠져들려 했던, 뜨거운 여름이라 불린 1975년 여름에 극에 달했다. 이 기간 포르투갈은 모든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을 승인한다.[25]

     
    2007년 리스본 조약 서명식 단체사진

    1975년 11월 25일 주로 리스본 군사지역 내 낙하산부대원과 헌병이 주축이 된 여러 급진 좌파 군부세력은 쿠데타 시도를 하지만, 이들은 뚜렷한 지도부를 갖지 못했다. 9인방(포르투갈어: Grupo dos Nove)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안토니우 하말류 이아느스가 지휘하는 군사계획을 실행에 옮겨 대응했다. 이들이 승리하면서 다음 해 민주주의가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 하말류 이아느스 본인은 다음 해 보통 선거로 뽑힌 첫 포르투갈 대통령이 된다. 또한 민주주의 헌법을 승인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아소르스, 마데이라 지방자치정부를 수립한다.[26]

    1940년대와 60년대 사이 포르투갈은 194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1960년 유럽 자유 무역 연합 (EFTA), 1961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 (OECD)의 공동 창립회원국이었으며, 이 중 EFTA는 유럽 경제 공동체 (EEC) 가입을 위해 1986년 탈퇴한다.[27] 1999년 포르투갈은 유로존에 가입하며,[28] 같은 해 마카우의 주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 이양한다.[29] 유럽 연합 가입 이후, 포르투갈은 총 3번의 유럽 이사회를 개최하였다. 가장 최근인 2007년 이사회에서는 리스본 조약 서명식을 거행하였다.[30]

    Duarte C; Maurício J; Pettitt PB; Souto P; Trinkaus E; van der Plicht H; Zilhão J (1999). “The early Upper Paleolithic human skeleton from the Abrigo do Lagar Velho (Portugal) and modern human emergence in Iberia”.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96 (13): 7604–9. doi:10.1073/pnas.96.13.7604. PMID 10377462.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가 나 다 라 “Portugal—History” (영어). Britannica Online Encyclopedia. 2012년 1월 22일에 확인함.  Barreira, Aníbal; Moreira, Mendes (2003년). 《Rumos da História》. 포르투: Edições ASA. 38, 39쪽. ISBN 972-41-2899-7.  Barreira, Aníbal; Moreira, Mendes (2003년). 《Rumos da História》. 포르투: Edições ASA. 63~79쪽. ISBN 972-41-2899-7.  Brown, Keith; Sarah Ogilvie (2008). 《Concise encyclopedia of languages of the world》. Elsevier. 883쪽. ISBN 0-08-087774-5.  Barreira, Aníbal; Moreira, Mendes (2003년). 《Rumos da História》. 포르투: Edições ASA. 116 ~ 127쪽. ISBN 972-41-2899-7.  Sousa, Manuel (2000). 《Reis e Rainhas de Portugal》. 멩 마르팅스: SporPress. 31 ~ 35쪽. ISBN 972-97256-9-1.  Sousa, Manuel (2000년). 《Reis e Rainhas de Portugal》. 멩 마르팅스: SporPress. 57 ~ 65쪽쪽. ISBN 972-97256-9-1.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년). 《História Geral e Pátria》.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13~19쪽.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 《História Geral e Pátria》.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21~33쪽.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년). 《História Geral e Pátria》.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98~103쪽.  ↑ 가 나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년). 《História Geral e Pátria》.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124~129쪽.  Sousa, Manuel (2000). 《Reis e Rainhas de Portugal》 (포르투갈어). 멩 마르팅스: SporPress. 117~122쪽. ISBN 972-97256-9-1.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 《História Geral e Pátria》 (포르투갈어).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134~139쪽.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 《História Geral e Pátria》 (포르투갈어).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207~209쪽.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 《História Geral e Pátria》 (포르투갈어).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218~224쪽.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 《História Geral e Pátria》 (포르투갈어).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279~284쪽.  Rede Municipal de Bibliotecas Públicas do concelho de Palmela. “1.ª República — Dossier temático dirigido às Escolas” (PDF). 2011년 12월 19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8월 30일에 확인함.  Sousa, Manuel (2000). 《Reis e Rainhas de Portugal》 (포르투갈어). 멩 마르팅스: SporPress. 157~158쪽. ISBN 972-97256-9-1.  HistóriadePortugal.info. “António de Oliveira Salazar”. 2012년 1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2월 19일에 확인함.  Mattoso, António; Henriques, Antonino (1965). 《História Geral e Pátria》 (포르투갈어). II volume: Idade Moderna e Contemporânea. 리스본: Bertrand, Lda. 304~305쪽.  Marcello Caetano, Renovação na Continuidade, Verbo, 리스본, 1971년. 《História 9》 (포르투갈어). 포르투: Porto Editora. 2004. 166쪽. ISBN 972-0-31405-2.  《História 9》 (포르투갈어). 포르투: Porto Editora. 2004. 168~172쪽. ISBN 972-0-31405-2.  《História 9》 (포르투갈어). 포르투: Porto Editora. 2004. 168쪽. ISBN 972-0-31405-2.  《História 9》 (포르투갈어). 포르투: Porto Editora. 2004. 174쪽. ISBN 972-0-31405-2.  《História 9》 (포르투갈어). 포르투: Porto Editora. 2004. 176쪽. ISBN 972-0-31405-2.  HistóriadePortugal.info. “Banco Central Europeu”. 2008년 10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0월 18일에 확인함.  HistóriadePortugal.info. “A legislação de Macau no termo da administração portuguesa” (PDF). 2011년 12월 19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0월 18일에 확인함.  HistóriadePortugal.info. “A Presidência portuguesa da União Europeia”. 2011년 5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4월 19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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