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 of 뉴질랜드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오세아니아의 오스트랄라시아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왕정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면적 268,000 제곱킬로미터 (103,500 mi2)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2,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뉴칼레도니아, 피지, 통가와 같은 태평양 도서와는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이 되었다. 또한 오랜 고립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생물적 다양성이 발전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지형과 높은 봉우리들은 화산 폭발과 육지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수도는 웰링턴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오클랜드이다.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더 보기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오세아니아의 오스트랄라시아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왕정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면적 268,000 제곱킬로미터 (103,500 mi2)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2,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뉴칼레도니아, 피지, 통가와 같은 태평양 도서와는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이 되었다. 또한 오랜 고립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생물적 다양성이 발전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지형과 높은 봉우리들은 화산 폭발과 육지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수도는 웰링턴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오클랜드이다.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언어는 마오리어와 뉴질랜드 수어

인데, 영어가 사실상의 공식언어로 쓰이며, 영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

뉴질랜드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또한 삶의 질, 보건, 교육, 시민자유의 보호, 경제적 자유와 같은 국가 성과에 대한 국제적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주요 경제적 변화를 겪었고, 경제 역시 보호주의에서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다. 뉴질랜드의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다수를 차지하며, 산업과 농업이 그 다음으로 많다. 관광은 뉴질랜드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행정기관의 역할을 한다. 현재 뉴질랜드의 총리는 저신다 아던이다. 찰스 3세가 뉴질랜드의 군주이며, 뉴질랜드의 총독이 국왕을 대신하는데, 현재 총독은 팻시 레디이다. 뉴질랜드의 행정 구역은 11개이며 지방자치를 목적으로 한 67개의 지역 당국이 있다. 뉴질랜드 왕국은 뉴질랜드의 속령인 토켈라우, 뉴질랜드와 자유연합 관계인 니우에와 쿡 제도, 그리고 뉴질랜드가 남극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로스 속령이 포함된다.

뉴질랜드는 유엔, 영국 연방, ANZUS, 경제협력개발기구, ASEAN 플러스 6,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태평양 공동체, 태평양 제도 포럼의 회원국이다.

More about 뉴질랜드

Basic information
  • Currency 뉴질랜드 달러
  • Native name New Zealand
  • Calling code +64
  • Internet domain .nz
  • Mains voltage 230V/50Hz
  • Democracy index 9.25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5118700
  • 영역 268021
  • Driving side left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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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리족은 타이완에서 멜라네시아까지 이주한 다음, 소시에테 제도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후예라고 알려져 있다. 70여 년에서 265년 동안 이들의 이주는 멈췄지만, 새로운 이주가 시작되었고 이들의 이주는 뉴질랜드의 발견과 정착화로 이어졌다.[1]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가장 마지막 육지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탈산림화의 증거,[2] 그리고 마오리족 주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변동성은[3] 동부 폴리네시아인들이 1250년부터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정착했으며[4][5]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거쳐 장기간 항해를 했음을 알게 해 준다.[6] 수 세기가 지난 후, 이 정착자들은 "마오리"라고 알려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주민들은 "이위"와 "하푸"로 구별되었고, 이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했으며,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했다.[7] 어느 순간 마오리족은 오늘날 채텀 제도로 알려진 레코후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마오리족은 그들만의 모리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8][9] 모리오리 주민들은 1835년부터 1862년 사이에 전멸했는데, 이는 타라나키 마오리가 이 지역을 침범해 1830년대부터 이 지역주민들을 노예로 삼았고, 유럽에서 온 질병들도 모리오리 주민들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 1862년, 모리오리 주민들 중 101명만이 살아남았고, 순수 모리오리 혈통을 가진 마지막 사람은 1933년 사망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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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리족은 타이완에서 멜라네시아까지 이주한 다음, 소시에테 제도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후예라고 알려져 있다. 70여 년에서 265년 동안 이들의 이주는 멈췄지만, 새로운 이주가 시작되었고 이들의 이주는 뉴질랜드의 발견과 정착화로 이어졌다.[1]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가장 마지막 육지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탈산림화의 증거,[2] 그리고 마오리족 주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변동성은[3] 동부 폴리네시아인들이 1250년부터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정착했으며[4][5]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거쳐 장기간 항해를 했음을 알게 해 준다.[6] 수 세기가 지난 후, 이 정착자들은 "마오리"라고 알려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주민들은 "이위"와 "하푸"로 구별되었고, 이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했으며,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했다.[7] 어느 순간 마오리족은 오늘날 채텀 제도로 알려진 레코후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마오리족은 그들만의 모리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8][9] 모리오리 주민들은 1835년부터 1862년 사이에 전멸했는데, 이는 타라나키 마오리가 이 지역을 침범해 1830년대부터 이 지역주민들을 노예로 삼았고, 유럽에서 온 질병들도 모리오리 주민들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 1862년, 모리오리 주민들 중 101명만이 살아남았고, 순수 모리오리 혈통을 가진 마지막 사람은 1933년 사망했다.[10]

     
    쿡이 뉴질랜드 첫 방문 때 그린 뉴질랜드의 해안선. HMS 엔데버의 항해과정도 그려져 있다.

    뉴질랜드에 처음으로 도착한 유럽인은 1642년에 뉴질랜드를 발견한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과 그의 승무원이었다.[11]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당시, 원주민들은 그들을 적대적으로 대했고, 이 결과 선원 4명이 죽고 마오리족 1명이 산탄총에 맞았다.[12] 유럽인들은 이후 뉴질랜드를 방문하지 않았고, 1769년이 되어서야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의 해안선 대부분을 지도로 그렸다.[11] 쿡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과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포경선, 물개잡이 배, 그리고 무역선을 이끌고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그들은 유럽산 음식과 금속 도구, 무기와 기타 제품들을 목제, 마오리 음식, 공예품, 물 등으로 교환했다.[13] 감자와 머스킷의 도입은 마오리족의 농업과 전쟁을 뒤바꿨다. 감자는 믿을만한 식량 보충원으로 제공되어 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14] 이 결과 벌어진 머스킷 전쟁에서 1801년부터 1840년까지 600회 이상의 전투가 발생했고, 3만 명에서 4만 명 사이의 마오리족이 사망했다.[15]19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마오리 인구가 기독교로 개종했다.[16] 한편, 마오리족의 인구는 19세기 동안 약 40% 감소했는데, 질병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17]

     
    와이탕이 조약이 명시된 종이.

    1788년 아서 필립 대위가 새로운 영국 식민지인 뉴사우스웨일스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위원회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에는 뉴질랜드도 속했다.[18] 영국 정부는 북부 마오리의 청원으로 1832년 제임스 버스비를 주뉴질랜드 영국 공사관으로 임명했다.[19] 1835년 샤를 드 티에리가 프랑스 정착이 임박했으믈 선언한 이후, 혼란스러웠던 뉴질랜드 부족연합은 윌리엄 4세에게 뉴질랜드 독립선언서를 제출하고 보호를 요청했다.[19] 불만은 지속되었고, 마오리족에게 땅을 사기 위해 감독관들을 태운 배를 이미 파견한 뉴질랜드 회사의 정착 제안과 뉴질랜드 독립선언서의 미심쩍은 법적 지위로 인해 식민성은 윌리엄 홉슨을 파견하였다. 윌리엄 홉슨은 뉴질랜드의 영유권을 영국이 주장하게 하고 마오리족과 협상을 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20] 1840년 2월 6일 아일랜즈 만에서 와이탕이 조약이 처음으로 체결되었다.[21] 뉴질랜드 회사가 웰링턴에 독자적인 정착촌을 세우려고 하고[22] 프랑스 정착민들이 아카로아에 땅을 구입하자,[23] 마오리족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와이탕이 조약의 복사본이 뉴질랜드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홉슨은 1840년 5월 21일 영국이 뉴질랜드 전체의 영유권을 소유한다고 선언했다.[24] 와이탕이 조약의 체결과 영유권 주장으로 이민자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25]

     
    1863년 호크스베이 지방에 사는 유럽계 및 마오리 주민들의 만남.

    뉴질랜드는 와이탕이 조약 이후에도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일부로 남아있었지만, 1841년 7월 1일 왕령 식민지인 뉴질랜드 식민지로 분리되었다.[26] 1843년 와이라우 학살 이후 영유권에 대한 의견 충돌과 땅 문제로 인해 식민지 정부와 마오리족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다. 주로 북섬에서 발발한 이 분쟁에서 수천 명의 제국군과 영국 해군이 뉴질랜드에 파견되었고 이 전쟁은 이후 뉴질랜드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뉴질랜드 전쟁 이후 정착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오리족의 땅은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다.[27]

    1852년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는 대의 정치를 시작하였고, 1854년에는 뉴질랜드 최초의 의회가 개설되었다.[28] 1856년 뉴질랜드 식민지는 자치가 가능해졌고 원주민 정책을 제외한 모든 국내 문제의 책임을 인계받았다.[28] 원주민 정책은 1860년대에 인계되었다.[28] 남섬이 또 다른 식민지가 될 것을 우려하여 뉴질랜드 제4대 총리인 알프레드 도멧은 뉴질랜드의 수도를 오클랜드에서 쿡 해협 인근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했다.[29] 웰링턴이 수도의 중심으로 선정되었고, 1865년부터 웰링턴에 의회가 자리잡았다.[30]

    1891년 뉴질랜드 자유당이 뉴질랜드에서 처음 설립된 정당으로 집권에 성공했다.[31] 리처드 세던이 재임 기간의 대부분 동안 자유당 정부를 이끌었고,[32] 자유당 정부는 뉴질랜드의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법안을 통과시켰다. 1893년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모든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고[31] 1894년 산업 조정 및 중재법을 제정하여 고용주와 노동연합 간의 중재를 의무화했다.[33]

    1907년, 뉴질랜드 의회의 요청에 따라 에드워드 7세는 뉴질랜드를 대영제국에 속한 자치령으로 선언하고,[34] 뉴질랜드의 자치 상황을 반영했다.[35] 1947년 뉴질랜드 의회는 1931년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채택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영국 의회가 뉴질랜드 의회의 동의 없이 뉴질랜드와 관련된 법을 제정하는 것을 금지했다.[28]

    20세기 초, 뉴질랜드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36] 대공황을 겪으면서 여러 국제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다.[37] 대공황으로 인해 뉴질랜드에서는 노동당 정부가 선출되었으며, 포괄적인 복지국가를 표방하게 되었고 보호무역 경제가 수립되었다.[38] 뉴질랜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번영하게 되었고[39] 마오리족은 전통적인 삶을 버리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이사하기 시작했다.[40] 마오리 항의운동이 발전하였고, 항의운동은 마오리 문화와 와이탕이 조약의 더 넓은 인정을 위해 일하고,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했다.[41] 1975년 와이탕이 조사위원회가 와이탕이 조약의 논란 항목들을 조사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1985년 역사적인 불만의 원인들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21] 뉴질랜드 정부는 와이탕이 조약의 주장과 정착문제에 대해 많은 이위들과 협상을 하고 있지만,[42] 마오리족의 해저 및 해안에 대한 주장은 2000년대 논란이 되기도 했다.[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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