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éxico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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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 of 멕시코

멕시코 합중국(스페인어: Estados Unidos Mexicanos 에스따도스 우니도스 메히까노스[*] 듣기 , México), 약칭 멕시코(스페인어: México / Méjico 멕시코[*], 문화어: 메히꼬)는 북아메리카 남부에 있는 나라이다. 수도는 멕시코시티이며 2016년 인구는 약 1억 2863만 2천 명으로 세계 10위이다. 북쪽으로는 미국,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과테말라와 벨리즈, 동쪽으로 카리브해와 접한다. 주요 도시로는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과달라하라, 푸에블라, 메리다, 캉쿤 등이 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멕시코는 국민의 88.0%가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이며, 10%가 토착인 또는 원주민(나우아족(Nahua), 마야족(Maya), 사포테카스족(Zapotecas), 믹테카스족(Mixtecas), 토토나카스족(Totonacas), 오토미족(Otomi), 마사우아족(Masaua, 우아스텍스족(Uasteks), 푸레페차족(Purepecha))이다.

More about 멕시코

Basic information
  • Currency 멕시코 페소
  • Native name México
  • Calling code +52
  • Internet domain .mx
  • Mains voltage 127V/60Hz
  • Democracy index 6.07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131135337
  • 영역 1972550
  • Driving side right
기록
  • 더 보기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재현 모델 (멕시코 시티의 인류학의 국립 박물관).
     
    테오티우아칸 고대 중미의 도시에서 달의 피라미드
    콜럼버스 이전 시대

    이 지역은 기원전 2만 년경에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으며, 선고전기 중기인 기원전 1300년경 멕시코만을 중심으로 올멕 문명이 발흥했다. 올멕 문명은 그들의 지배자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알려진 흑인 인종의 특징을 가진 거대한 석상 두상으로 알려져 있다.

    선고전 시대의 말기에 멕시코 중앙 고원 텍스코코 호수 남쪽에 원형의 대형 피라미드로 알려진 쿠이쿠일코(Cuicuilco) 동쪽으로 테오티우아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 그 후에도 후기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과 같은 여러 고급 원주민 문명의 거점으로 활약했다.

    아즈텍 제국

    14세기 후반, 텍스코코 서쪽에 있던 테파넥 족 국가의 아스카포찰코(Azcapotzalco)에 테조조목이라는 지도자가 등장하였다. 그가 이끌던 용병부대였던 아즈텍은 테조조목 사후, 15세기 초반에 텍스코코, 틀라코판과 함께 아즈텍 삼국 동맹을 맺었고, 텍스코코의 이름난 군주였던 네살왈코요틀의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지도력을 갖추고 주변국을 정복하여 아즈텍 호수 위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아즈텍 제국을 형성하였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1]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한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과 탐험의 시대를 거쳐 16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인 정복과 식민 통치시대가 시작되었다.[2] 레콘키스타 완성직후 재정상황이 좋지 못했던 스페인 왕실은 신대륙 정복사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수익의 1/5을 상납하는 조건하에 정복자들과 개별계약을 통해 개척사업이 민간주도하에 진행되도록 했다. 1521년 코르테스와 그가 이끄는 정복자들은 아즈텍을 정복하였다.[3] 스페인은 정복한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멕시코시티를 건설하고 멕시코 일대를 누에바 에스파냐(새로운 스페인)라는 부왕령으로 만들어 식민통치에 들어갔다.[4]

    1529년에 탁스코,[5] 1534년에 파추카, 1546년에 사카테카스,[6] 1548년 과나후아토(Guanajuato)에서 은 광산이 발견되었다.[7][8] 이 지역에서 생산된 은은 볼리비아 포토시은 광산과 함께 스페인에 큰 부를 안겨다 주었다. 스페인은 멕시코시티와 과나후아토 및 사카테카스를 각각 잇는 은의 길(Silver Road)이 건설하고 1630년까지 이 길을 이용하여 생산된 은의 60%를 수출하였다.[9] 멕시코 시티의 조폐소에서 '8 레알 은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은화는 대항해 시대이래 활발해진 대륙간 교역에서 기축통화로 사용되었다.[10][11] 은 광산으로 번성한 사카테카스와 과나후아토는 스페인의 식민지배, 선교, 문화 팽창의 중심지가 되었다.

    약 300년간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지배로 스페인어와 가톨릭이 보급되고, 인디오와 스페인인 사이에 혼혈이 진행됐으며, 스페인 기원의 봉건적 대토지 소유 제도가 생겨났다.

    멕시코 독립 전쟁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 이달고 신부

    스페인의 지배는 300년을 이어졌으며, 18세기에 들어서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등의 영향을 받아 토착 크리올들 사이에 독립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 1세가 스페인 정쟁에 개입을 빌미로 스페인을 정복한후 왕위를 찬탈하여 형인 조제프를 스페인 왕 호세 1세로 즉위시켰다. 이것에 반발하는 스페인 민중 봉기를 계기로 스페인 독립 전쟁이 시작되면서,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도 신임 국왕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였다. 1809년부터 1810년까지 키토, 라파스, 산티아고, 카라카스, 보고타,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라틴 아메리카 각지에서 크리올료들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가운데 멕시코에서도 1810년 9월 16일 이달고 신부 등의 스페인 타도를 외치는 멕시코 독립 전쟁이 시작되면서 오랜 전쟁의 막이 올랐다.

    멕시코의 크리올료는 페루의 크리올료와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의 민중 반란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독립 운동에는 소극적이었다. 1811년 이달고 신부가 생포된후 순교했고, 독립투쟁을 이어받은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신부는[12] 1815년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이끄는 왕당파 군에게 패전하며 총살당했다. 이후 멕시코 지역의 독립투쟁이 지지부진하였으나 1820년 경에 남미에서는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데 산마르틴 등이 이끄는 해방군이 각지에서 해방시켰다. 인디아스에 남는 식민지는 도서 지역과 브라질을 제외하면 페루, 중미, 멕시코 밖에 없었다.

    스페인 본국에서 자유파가 정권을 잡으면서(리에고 혁명), 1821년 9월 15일에 보수파 크리올료를 대표하는 독립 지도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멕시코시티에 입성하였고, 독립을 선언했다. 이투르비데는 황제에 즉위하며 제1멕시코 제국을 건국하였고, 중앙아메리카를 병합했다.

    텍사스 분리 독립
     
    멕시코-미국 전쟁을 통해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에 달하는 캘리포니아를 미국에 빼앗겼다

    독립 이후 혼란은 계속되던중에 1823년 황제가 퇴위하고 제국이 붕괴하면서 멕시코 연방 공화국이 되었다. 중미지역은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 분리독립했다. 독립 후 내전에 의한 농업 생산력의 저하, 광산의 생산력 저하, 카우디요 등의 군웅 할거로 유통의 혼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대가 이어졌다. 1835년 10월 23일부터 1846년 8월 22일까지는 중앙 집권 국가인 멕시코 공화국이 있었다.

    또한 코아우일라이테하스 주에 미국 이주민의 정착을 인정하였고, 1835년에는 앵글로 색슨 계 이주민이 반란을 일으켜 1836년에 멕시코령 테하스는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을 했다. 그 후, 미국이 1845년 텍사스를 합병하자, 1846년에는 텍사스를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미국 전쟁이 발발한다. 그러나 멕시코는 멕시코시티를 점령당하고, 1848년에 패배하면서 텍사스를 매각하고 뉴멕시코주·캘리포니아주 등의 땅을 미국에게 팔았다. 결국 멕시코는 리오브라보 강 이북의 영토 (이른바 멕시코 할양지)를 상실했다. 영토 상실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은 깊어졌다.

    프랑스의 침공

    혁명과 내전으로 경제가 악화되자 멕시코 후아레스 대통령은 1861년에 외채상환을 중지하였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함대가 1861년 겨울에 멕시코의 베라크루스항(港)을 봉쇄한후 압박해오자 멕시코 정부는 채무 상환 협상에 임하였다.[13] 스페인과 영국은 합의가 종료된후 1862년에 철수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돌연 멕시코 영토를 침공하여 멕시코 시티를 점령해버렸다. 먼로 독트린을 선언하며 아메리카와 유럽의 상호 불간섭을 선언했던 미국이 내전에 돌입한 틈을 노린 행위였다.

    나폴레옹 3세는 1864년에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을 황제로 추대하여 멕시코 제2 제국을 수립하였다.[14] 멕시코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가 지휘하는 멕시코 군은 프랑스 군에 거세게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1865년 남북전쟁을 끝마친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재차 천명하며 프랑스에 강력히 항의하였고 멕시코에 무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움을 얻은 멕시코 군은 1866년에 프랑스 원정군을 멕시코에서 퇴각시키는데 성공했다. 주권회복에 성공은 했으나 이후 두고두고 미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후아레즈는 자유주의자로 레포르마 (개혁)을 추진했지만, 1872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후아레즈의 뒤를 이은 테하다 대통령은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지만, 지도력의 부족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디아스의 독재와 멕시코 혁명

    이 틈을 타서, 1876년 프랑스 개입 전쟁의 영웅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에 취임했다. 디아스는 30년 이상에 걸친 강압적인 독재를 펼쳤으며, 외자를 도입하고 경제를 확장시켰지만, 비민주적인 정권 운영으로 국내 각지에 소요를 유발했다.

    1907년 공황의 영향이 멕시코에 미치자 각처에서 노동쟁의가 발발하였고, 1910년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디아스가 상대 후보인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체포 감금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멕시코 혁명’이 시작되었다.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베누스티아노 카란, 알바로 오브레곤 등이 이끈 혁명군은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부군을 물리치고 1917년에 혁명 헌법을 반포하면서 혁명은 끝이 났다. 혁명은 끝났지만, 지도자들 간의 노선 대립으로 잠시동안 정치적 불안 상태가 이어졌다.

    PRI 일당 독재

    1929년에는 국내의 다양한 혁명 세력을 하나로 묶어 국민혁명당(PNR)이 결성되어 71년간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가 수립되었다. 1934년에 성립된 라자로 카르데나스 정부는 유전 국유화 사업이나 토지 개혁을 실시하여 국내의 경제 구조는 안정되었다. 이후 당명을 제도혁명당(PRI)으로 바꾸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사이에 두고 일당 독재 하에 국가의 개발을 진행했다. PRI는 국내에서는 일당 독재를 추진하고, 미국과 서방의 자본에 의해 경제를 확대했지만, 다른 한편 외교적인 면에서는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과의 관계도 밀접하게 가져갔으며, 정책이 모순된 체제면서도 냉전이 종결된 20세기 말까지 여당으로서 정치를 지배했다.

    또한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석유와 실버의 생산과 수출이 큰 부를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진행된 근대산업화 과정에서 막대한 대외 부채를 안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일부 부유층에 집중된 부의 불균형, 그리고 자원 가격 폭락에 따른 경제 위기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괴롭히는 결과가 되었다.

    EZLNf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의 마르코스 부사령관(가운데). NAFTA의 발효일에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 마야계 인디오의 생활을 위한 공간을 요구하며 반자본주의 기치를 내걸고 자치 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최남단 과테말라 국경 지대의 치아파스주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1994년 1월 1일 무장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에 의한 통치가 이어져 사실상 해방구가 되었다. 1994년에 발효된 NAFTA는 미국, 캐나다와의 무역을 확대하는 한편 빈부격차를 일시적으로 확대하고 전통적인 공동체에 사는 인디오의 공유지를 해체하고, 미국산 옥수수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같은 해 1월 1일에 마르코스 부사령관 등이 이끄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가난한 주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했다. 사파티스타는 전투를 끼운 후 치아파스 주를 해방구로 선포하고 반세계화 운동의 최대적 존재로서 내외의 지원을 받아 현재도 정부군과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그 후 2000년에 PRI는 만연한 부패와 침체된 경제 실책에 대한 책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봉기 등의 책임을 지고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국민행동당을 이겨서 71년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현재도 강력한 정당으로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현

     
    55대 비센테 폭스 대통령(왼쪽)

    2000년대, 특히 2005년 이후 마약 카르텔의 항쟁에 의해 치안이 악화된다. 전 정권인 칼데론 정부는 마약 카르텔과 유착한 경찰 간부와 주지사 조차도 체포하겠다는 강경 자세로 군을 이끌었고, 마약 범죄 조직을 단속했다. 이에 따라 카르텔의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급증하였고, 2010년에는 매년 1만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는 사태가 되었다 (멕시코 마약 전쟁).

    한편, 원유가의 상승이나 NAFTA 체결 후 수출 물량 증가, 또한 내수 확대에 의해 중산층이 증가하고 넥스트 일레븐의 한 국가로 꼽히고 있다. 경제 정책에서는 유가 상승에 따라 휘발유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하여 국민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2009년에 들어 와서는 캐나다와 미국과 함께 신종플루(H1N1)의 발상지가 되었다.

    2010년 7월 4일, 전국 32개 주 중 14개 주에서 지방 선거가 실시되었다. 2000년까지 집권당이었던 야당 제도혁명당(PRI)이 압승(지사 선거가 실시된 12개 주 중 10개 주에서 당선)을 했다.

    PRI 정권의 재등장

    2012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주의 정당인 제도혁명당(PRI)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임기 : 2012년 12월 1일 ~ 2018년 11월 30일)가 선출되어 대통령 직을 수행하여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에게 정권을 내주고 퇴임하였다.

    PRI 정권의 몰락과 89년만에 좌파 정권 탄생

    2018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재건운동을 창당한 멕시코 정치의 좌파를 대표하는 인물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당선이 확정되어 1929년 대통령 선거 이후 89년 만에 좌파 정권으로 교체되었다.

    송기도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개마고원 2003년 p59 강준만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 개마고원 1999.6.10, p45 강석영 <라틴아메리카사 (상)>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6년 p42 [네이버 지식백과] 멕시코시티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11. 5. 10., 이형준) [네이버 지식백과] 탁스코 [Taxco] (두산백과) 홍춘욱 <돈의 역사> 로크미디어 2019.6.14, p37 주경철 <대항해시대> 서울대학교 출판사 2008.12.12 p251 윌리엄 번스타인 <무역의 세계사> 라이팅하우스 2019.4.10 p315 [네이버 지식백과] 사카테카스 역사 지구 [Historic Centre of Zacatecas]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카를로 M. 치폴라 <스페인 은의 세계사> 미지북스 2015 p85~98...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정복초기에 라틴 아메리카에는 금속화폐가 없었다. 1535년 5월 11일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가 멕시코 시티에 화폐 조폐소 건립을 명하였다. 윌리엄 번스타인 <무역의 세계사> 라이팅하우스 2019.4.10 p327~329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3> 까치글방 2003.3.13, p379 [네이버 지식백과] 멕시코원정 [Mexican Expedition] (두산백과) 강준만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 개마고원 1999.6.10,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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