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 of 코소보

코소보(알바니아어: Kosova 코소바, 세르비아어: Косово / Kosovo 코소보, 문화어: 꼬쏘보)는 남유럽에 위치한 영토 분쟁 지역이자 부분적 승인 국가이다. 2008년 코소보 독립선언 이후 세르비아에서 독립해 코소보 공화국(알바니아어: Republika e Kosovës 레푸블리카 에 코소버스, 세르비아어: Република Косово / Republika Kosovo 레푸블리카 코소보)이라는 국명을 채택했다.

코소보는 발칸반도의 내륙국이다. 발칸반도 내에서 전략적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아드리아해, 흑해와 중앙 및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했다. 코소보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는 프리슈티나로 다른 주요 지역에는 프리즈렌, 페야(페치), 자코바(자코비차) 등이 있다. 코소보는 남서쪽으로 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북마케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경 서쪽에는 몬테네그로가 있으며 북쪽과 동쪽에는 세르비아의 자치 지역 및 행정 지역이 있다. 러시아는 코소보의 정부가 다스리는 영토 내 행정 지역은 인정하고 있지만 세르비아는 코소보 메토히야 자치주라는 명칭 하에 코소보를 자기 영토라 주장하고 있다.

More about 코소보

Basic information
  • Currency 유로
  • Calling code +383
  • Mains voltage 230V/50Hz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1883018
  • 영역 10909
  • Driving side right
기록
  • 코소보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빈차 문화, 스트라체보 문화, 바덴 문화로 대표된다. 고전 고대에서는 일리리아인, 다르다니안, 켈트인이 이 지역에서 거주했다. 기원전 168년 이 지역은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다.[1] 중세 시대에는 불가리아 제1제국,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다스렸다. 1389년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 중세 시기의 중요한 시기로 보기도 한다.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는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에 맞서 항전한 성지로 여겨졌다. 국가는 세르비아 중세 국가들의 핵심 지역이었고 14세기에는 세르비아 정교회가 자리잡기도 했다.[2][3]

    코소보는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19세기 말 코소보는 알바니아 민족자각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한 이후 1913년 런던 조약에서 오스만 제국은 코소보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할양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두 국가 모두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참여했고, 유고슬라비아 통일주의 하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헌법 하에 코소보 메토히야 자치주가 탄생했다.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 공동체 간의 갈등은 20세기에 심화되고 있었다. 코소보는 원래 1971년부터 알바니아인들에게 자치가 허용된 지역이었다. 1992년에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민족주의가 대두되어 각지에서 독립을 외치자 세르비아 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1990년대에 코소보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알바니아인들을 문화 탄압, 일자리 박탈, 인종 정화라는 이름의 학살로 탄압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일어난 코소보 전쟁에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개입하면서 코소보는 유엔의 통치를 받는 자치 지역이 되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선언을 했고, 2019년 11월 22일 기준으로 93개의 유엔 회원국과 중화민국, 쿡 제도, 니우에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4] 러시아는 코소보를 국가로 승인하진 않았지만,[5] 2013년 브뤼셀 협정에서 입법 기구의 적법성만 승인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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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소보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빈차 문화, 스트라체보 문화, 바덴 문화로 대표된다. 고전 고대에서는 일리리아인, 다르다니안, 켈트인이 이 지역에서 거주했다. 기원전 168년 이 지역은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다.[1] 중세 시대에는 불가리아 제1제국,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다스렸다. 1389년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 중세 시기의 중요한 시기로 보기도 한다.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는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에 맞서 항전한 성지로 여겨졌다. 국가는 세르비아 중세 국가들의 핵심 지역이었고 14세기에는 세르비아 정교회가 자리잡기도 했다.[2][3]

    코소보는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19세기 말 코소보는 알바니아 민족자각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한 이후 1913년 런던 조약에서 오스만 제국은 코소보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할양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두 국가 모두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참여했고, 유고슬라비아 통일주의 하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헌법 하에 코소보 메토히야 자치주가 탄생했다.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 공동체 간의 갈등은 20세기에 심화되고 있었다. 코소보는 원래 1971년부터 알바니아인들에게 자치가 허용된 지역이었다. 1992년에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민족주의가 대두되어 각지에서 독립을 외치자 세르비아 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1990년대에 코소보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알바니아인들을 문화 탄압, 일자리 박탈, 인종 정화라는 이름의 학살로 탄압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일어난 코소보 전쟁에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개입하면서 코소보는 유엔의 통치를 받는 자치 지역이 되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선언을 했고, 2019년 11월 22일 기준으로 93개의 유엔 회원국과 중화민국, 쿡 제도, 니우에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4] 러시아는 코소보를 국가로 승인하진 않았지만,[5] 2013년 브뤼셀 협정에서 입법 기구의 적법성만 승인했다.[6]

    Papazoglu, Fanula (1978). 《The Central Balkan Tribe in Pre-Roman Times: Triballi, Autariatae, Dardanians, Scordisci and Moesians》. ISBN 978-90-256-0793-7.  Sharpe, M.E. 《Ethnic Groups and Population Changes in Twentieth-Century Central-Eastern Europe》. 364쪽.  《RFE/RL Research Report: Weekly Analyses from the RFE/RL Research Institute, Том 3》. 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보관된 사본”. 2020년 5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1월 3일에 확인함.  “7 Years of Kosovo » Howard Smith of Geelong”. 2016년 12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4월 13일에 확인함.  “Kosovo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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