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에는 첸탕강(钱塘江)의 일부였다가, 진흙모래가 쌓여서 남과 북쪽에 있는 오산(吴山)과 보석산(寶石山)을 막아서 형성된 호수이다.
백제(白堤)곡원풍하
화항관어
서호의 놀잇배
당나라 중반 덕종 정원(唐貞元,785-804) 연간에 백거이(白居易)가 항저우로 임명되어 무너진 제방이 농사를 망치는 것을 보고 제방공사를 다시 하였다. 백거이는 더 길고, 튼튼한 둑을 쌓게 했는데, 이로 인해 수원이 풍부해지면서 가뭄을 해갈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백제(白堤)다. 그는 둑 옆에 수양버들을 심고는 매일 산책하고, 공사를 감독하였다.
소제(蘇堤)2백년 후 송나라 초기 철종 원우(1086-1094) 때 유명한 소식(蘇軾, 소동파)이 항저우에 임명되어 왔다. 이때 다시 농민들은 가뭄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 웃자란 수초들 때문에 물대기가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 소동파는 호수 바닥에 침전된 진흙을 모두 파내게 했는데, 이것이 기존의 백제보다 세 배는 더 길고, 넓었다. 이게 나중에 소동파의 성을 따서 소제(蘇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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