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dral de Sevilla
( 세비야 대성당 )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세비야에 있는 로마 가톨릭 대성당이다. 1987년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스페인의 주교좌 성당이기도 하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10번째로 거대한 성당이며, 가장 거대한 규모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16세기 완공된 이후, 세비야 대성당은 수 천년 동안 가장 거대한 성당이라는 명예를 지니고 있던 아야 소피아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성당으로 떠올랐다. 대성당은 11,520평방 미터의 면적을 차지하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부분의 길이는 약 126m, 너비는 약 76m이며, 그리고 첨탑의 최고 높이는 42m이다. 특히 세비야 대성당의 종탑인 히랄다 탑은 104.5m의 높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세비야 대성당은 1478년에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아라곤의 후안 왕자가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며,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 알폰소 10세와 같은 군주들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기도 하다. 추기경의 경우에는 후안 드 세르반테스 추기경, 페드로 곤잘레즈 데 멘도자 추기경 등이 묻혀있으며, 유명한 모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그의 아들도 이 곳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1172년, 스페인 지방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던 시절, 무와히드 칼리파조의 아부 야쿠브 유수프 칼리프는 도시의 남쪽 끝에 새로운 모스크를 지을 것을 명하였다. 새로운 모스크는 1182년 축성되었으나, 1198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이 새 모스크는 옛 이슬람 지배자였던 우마르 이븐 아다바스가 지었던 옛 모스크를 대신하여 도시의 상징으로 떠올랐으며, 참고로 현재 이 옛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는 교회당이 자리잡고 있다. 새 모스크는 도시의 알카사르에 더 가까이 인접해있어 군주와 그 가족들이 더 찾기 쉬운 위치에 있었으며, 당시 저명한 건축가 아흐메드 반 바소에 의하여 설계되었다. 건물은 길이 113m, 너비 135m의 직육면체 건물이었으며, 미나렛과 부속 건물들을 포함하여 약 15,000평방 미터의 면적을 차지했다. 건물에는 17개의 통로가 남쪽으로 뻗어있었고, 특히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가리키는 방향과는 수직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기독교 모스크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한 직후, 옛 이슬람 모스크는 곧바로 성당으로 그 용도가 전환되었다. 모스크의 내부는 성당의 용도에 맞게 제단이 설치되고 기독교 성물들이 모셔지는 등 크게 리모델링되었으며, 내부 공간에는 거대한 벽들이 설치되어 구획이 나누어졌으며, 크게 공간을 북쪽과 남쪽 벽으로 인하여 몇 칸으로 나뉘게 되었다. 모스크의 동쪽 절반은 거의 왕실 전용 예배당으로 쓰였으며, 후에 이 예배당에 페르난도 3세와 그의 가족들, 알폰소 10세 등의 유해들이 안치되었다.
고딕 대성당세비야 대성당은 1248년의 레콩키스타 이후 스페인의 주요 무역소로 새로이 떠오른 세비야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세워졌다. 1401년 7월, 도시의 지도자들은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가 기독교 도시 가운데에 버티고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보고, 도시의 영광을 상징할 새로운 대성당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구전에 의하면, 당시 성당의 성직자가"Hagamos una Iglesia tan hermosa y tan grandiosa que los que la vieren labrada nos tengan por locos"라고 말했다고 한다.[1] 이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새로운 대성당을 엄청나게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만들어서, 완성된 대성당을 본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듭시다"라는 뜻이다. 이후 1401년에 공사가 시작되었고, 작업은 1506년까지 지속되었다. 추기경단들은 그들의 봉급의 절반을 털어 건축가들에게 지급하는 등 기부 행렬이 뒤따랐고, 그 외에도 스테인드글라스 장인들, 예술가들, 석공들, 조각가들에 대한 봉급들도 상당 부분 기부로 의하여 충당되었다[2]. 다만 1430년대에 왕실이 옛 모스크에 있던 왕실 전용 예배당을 철거하는 것에 대해 꺼리는 모습을 보이며 잠시 핵심 공사가 유보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434년에 후안 2세가 예배당에 모셔져 있던 왕실 유해를 임시로 만든 안치소에 한시적으로 모시는 것을 허락하며[3] 다시 공사가 재개되었다.
1511년, 대성당이 완공된 지 5년 후에 대성당의 채광용 랜턴이 무너져 잠시 예배가 중단되었다. 이후 1888년에 장식이 무너져 보수 공사를 가졌고, 이 때 이러진 돔 개축 공사는 1903년까지 계속되었다. 참고로 1888년에 일어난 붕괴 사고로 인하여 지진으로 일어났으며, 이로 인하여 그 아래에 있는 대다수의 '귀중한 성물'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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