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
(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전설에 의하면, 사도 성 야고보가 이베리아반도에 기독교를 전래했다고 한다.[1][2] 전승에 따르면, 성 야고보의 무덤은 서기 814년에 운둔자 펠라요가 재발견하였는데, 이후에 그는 리브레돈 숲 위의 밤하늘에서 기이한 빛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리아의 테오도미루스 주교는 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였고 아스투리아스와 갈리시아의 왕 알폰소 2세 (791년-842년)에게 알렸다. 알폰소는 그 장소에 예배당을 지으라 명령했다. 전설에서 전한 바에 의하면 알폰소는 이 성소의 첫 순례객이라고 한다. 그 후 서기 829년애 최초의 교회 건설이 잇따랐고 그 다음에는 레온의 알폰소 3세의 명령에 의하여 899년에 로마네스크 이전 양식의 교회가 생겼는데,[3] 이 건축물은 이곳을 성지 순례 주요 장소로서의 점진적인 발전을 야기하였다.[4]
997년에 이 초기 교회는 코르도바의 칼리프의 군 지휘관 알만수르 이븐 아비 아미르 (938년-1002년)에 의해 재가 되고 말았다. 성 야고보의 무덤과 성물은 건들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기독교인 포로들이 코르도바로 끌고 간 교회의 문과 교회종 등은 알자마 모스크에 더해졌다.[5] 코르도바가 1236년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에게 점령됐을 당시, 이 문과 교회종은 무슬림 포로들에 의해 톨레도로 운반되었고, 톨레도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설치되었다.
현재의 대성당 건설은 1075년에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 (1040년-1109년)의 재위 시절과 디에고 펠라에스 주교의 후원 하에 시작되었다. 프랑스 내 최대 규모의 로마네스크 건물이었을 툴루즈에 있는 생 세르냉 대성당과 동일한 설계에 따라 지어졌으며, 대부분에 화강암 재료를 사용하였다. 건설은 수 차례 중단되었으며, '리베르 상티 야곱'(Liber Sancti Iacobi)에 따르면, 건축물의 마지막 벽돌이 1122년에 놓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 시기 쯤, 대성당의 건설은 확실히 완료되지 않았었다. 대성당은 레온의 알폰소 9세가 있던 시기 축성되었다.[6][7]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에 의하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의 건축가들은 '뛰어난 기술장 대 베르나르'와 그의 조수 로베르투스 갈페리누스(Robertus Galperinus), 그리고 후반기를 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성당의 작업 반장 에스테반'이라고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소 베르나르'가 건축을 완료하였고, 갈페리누스는 장식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1122년에 북쪽 입구 앞쪽에 기념물 성격의 분수대를 설치하였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1075년에 자체 교구가 설치되었다. 성지 순례의 장소로서 그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1100년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대교구로 그 지위를 승격시켰다.
도루강 유역의 일부 교회들에 있는 특유의 랜턴 탑들 (사모라, 플라센시아, 토로, 에보라)이 15세기에 고딕 양식의 탑으로 대체된 산티아고 대성당의 로마네스크 돔에서 영양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8] 대성당은 16, 17, 18세기에 확장되고 추가 시설물들로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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