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뷔(Visby)는 스웨덴 고틀란드주의 주도이다. 이곳은 잘 보존된 중세 도시이며 세계유산으로 지명된 상태이다. 가장 유명한 역사적인 유물은 링무렌(스웨덴어:Ringmuren 영어:The Ring Wall)이라 불리는 3.4 km 길이의 돌벽이며, 도시와 오래된 교회 옛터를 에워싼다.

그 이름 "비스뷔 (Visby)"는 희생적인 장소를 뜻하는 (Vi의 속격 단수) 고대 노르드어 Vis와 "도시"를 뜻하는 by로부터 왔다.

도시의 인구는 22,236명(2005년 기준)이며, 고틀란드주의 주지사 소재지이다. 스웨덴에 있는 다른 마을들과 도시들처럼, 비스뷔는 정치적이거나 행정적인 실체가 아니다. 고틀란드 자치제의 없어서는 안될 부분을 형성하며, 자치제의 소재지이다.

비스뷔의 가장 초기 역사는 불확실하지만 서기 900년경 상품의 중심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선한 물과 천연 항구에 접근 때문에, 일찍히 석기시대에 거주를 한 상태였다.

12세기에 성모 마리아에 봉납하는 비스뷔 대성당이 건설되었다. 13세기에 성당은 현재의 외관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1225년 스웨덴 링쾨핑 시의 주교에 의해 공식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비스뷔 시를 둘러싸는 담에 관한 작업이 12세기에 시작했을것으로 추측된다. 1300년경 비록 몇몇 탑들이 15세기까지 건설되지 않았을지라도, 특유의 탑을 만들어 현재의 높이에 도달하기 위해 개축되었다. 그 담은 아직도 크게 손상되지 않은 상태이다.

1361년 고틀란드는 덴마크의 발데마르 4세에 의해 정복당했으며, 덴마크의 도시가 되었다. 그 때의 사정으로 중요한 몇몇 퇴보가 일어났다. 1391년, 1394년, 1398년 발트해를 항해했던 해적, 비틀 브라더스 (Victual Brothers)에 의해 약탈당했다. 1411년 포메라니아의 에리크왕은 비스보그성을 건설했고, 12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으며, 도시가 시각적으로 해적 소굴이 되어갔을 동안, 상업은 멈춰졌다. 1470년으로서, 한자동맹은 한자동맹의 마을로서 비스뷔의 지위를 무효케했다.

1525년, 비스뷔의 상인들은 현재 독일에 있는 뤼베크와 앙숙 관계였다. 뤼베크인들은 대성당을 제외한 모든 비스뷔의 교회를 불태웠다. 그 폐허들은 오늘날까지 보존된 상태이며 현대 도시에 웅장함을 더해준다.

1645년 고틀란드는 덴마크의 300년 지배 이후, 스웨덴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다. 18세기 중엽 삶의 기준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몇가지 시도가 스웨덴 정부 관리들에 의해 행해졌지만 약간만이 성취되었다. 19세기 초기가 돼서야 비로소 비스뷔는 다시 한번 상업과 항만 산업이 부흥되었다. 동시대인 1808년 고틀란드는 러시아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평화스럽게 2달 뒤에 스웨덴에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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